<두번째 사랑> 김진아 감독(1)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한미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김진아 감독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그 집 앞> 등의 작품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는 실력파 감독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극영화 연출과 한국영화 이론 등을 강의하고 있는 그녀는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진심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어 기자를 감동시킨 김진아 감독은 진심이 느껴지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한 명이라도 자신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고, 더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주파수를 가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배우들을 미리 생각해두셨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어요. 작가와 연출을 겸하는 사람으로서 시나리오 쓸 때는 영화는 감독의 것이고, 촬영에 들어가면 영화는 배우의 것이고, 편집이 들어간 후부터는 영화는 관객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소피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지만 정말 맑은 느낌을 가진 헌신적인 느낌의 여자일 거야” 라고 설정해놓고 그려나갔어요. 지하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리려고 했고요.

시나리오를 쓸 때 캐스팅의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그런 우려를 당연히 했었죠. 다행히 저희 캐스팅 디렉터가 대단히 능력이 있는 분이라 많은 여배우들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를 많이 알고 있더라도 영화랑 어울리지 않는다면 안 되는 거잖아요. 노출 신이 많고, 어마어마한 감정의 기복을 오가야 하지만 대사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배우 선정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헌신적인 어머니 상에서 시작했다가 자기 욕망을 찾고 삶을 찾는 여자의 모습을 폭넓게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소피’ 역할에 어울릴만한 배우를 찾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여배우가 필요했거든요. 많은 배우를 추천을 받았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어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기존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배우가 필요했어요. 관객들이 ‘왜 저런 여자가 한국 남자와 저러고 있어’ 이런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웃음) 연기력이 뒷받침되면서도 마스크는 신선해야 했기 때문에 여배우 선정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참에 우연히 <절망의 끝에서>라는 영화를 보게 됐어요. 그 영화를 통해 베라 파미가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기 때문에, 그 배우가 어느 인지도가 있는 배우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어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준 신들린 연기는 저로 하여금 “저 여자 원래 저런 여자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어요. 마약 중독자로 나오는데 너무 리얼하게 연기를 해서 정말 그런 여자로 의심했다니까요.(웃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베라 파미가가 주연한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너무 놀란 게 영화마다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알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캐스팅 디렉터한테 바로 전화를 했죠 “정말 이 배우랑 같이 일하고 싶다.” 캐스팅 디렉터가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1순위에 있는 배우라고 말했을 때 “어머 나는 왜 몰랐지?”라고 내 자신을 자학했어요.(웃음) 캐리비안의 배 안에서 휴가 중인 베라 파미가가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고, 휴가가 끝난 뒤 뉴욕으로 곧장 와서 저를 만났어요. 다른 영화를 찍으러 러시아로 가기 바로 당일에 시간을 내서 저를 만난 거에요. 카페에서 만났는데 소피 역을 이미 하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온 것 같았어요. 저를 보자마자 “소피 역의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할 거야” “그 신에서 어떻게 감정을 처리하면 좋을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서, 그녀를 보는 순간 “내가 그토록 찾던 소피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시나리오 쓸 때와 현장에 있을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하세요?
현장에 있을 때요. 비교가 안 돼요.(웃음) 시나리오 쓸 때는 나름 예술가의 마음을 가지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까 괴로운 일도 많고 외로워요. 사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하는 후반작업도 만만치 않게 괴로워요. 왜냐하면 밀폐된 공간에서 배우와 스탭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써준 결과물을 가지고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막중해서 괴롭고 힘들어요. 반면, 현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어요. 

정말 “나는 이 일을 재미있어서 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배우들과 일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요. 제가 머리 속에서 생각했던 일들을 그림으로 현실화되는 것을 볼 때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고쳐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겁고요.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에서 연출해 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웃음) 사실 미국 CAA에서 보내준 시나리오들이 할리우드에서 진행 예정에 있는 큰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거든요. 크기가 큰 만큼 비슷비슷한 면도 많고요. 왜냐하면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작업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적이 있어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였는데, 안젤리나 졸리가 이미 캐스팅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저보다 이틀 먼저 시나리오를 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기회가 돌아갔어요. 당연히 그런 거장 감독과 경쟁을 할 수 없는 거니까 깨끗하게 물러섰죠.(웃음) 그리고 나서 생각했죠.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배우까지 투입된 영화는 거장 감독한테 뺏기기가 쉽구나. 그때부터 파라마운트가 개발 단계부터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한테는 빠른 길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을 뉴욕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저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많은 인종들이 혼합이 되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안에서 굉장히 분리가 되어있는 도시 또한 뉴욕이라는 사실이에요. 계급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업퍼 이스트 사이드라는 곳에 가면 주류사회로 편입하고 싶은 사람들을 쉽게 접하게 돼요. 그리고 차이나타운에 가면 여기는 중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야말로 오리지널한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서로를 곁눈질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사람들의 시선 교환에서 저는 늘 섹시함을 느꼈어요. 개발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 같은 곳을 평생 가 볼 일이 없는 금발의 부유한 백인여성이 지하라는 남자를 쫓아갔을 때 그 풍경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다가 나온 곳이 뉴욕이라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문화적, 인종적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으로 뉴욕을 선택하게 되었죠.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요?
저도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요. 2~300백만 불 사이라고 알고 있어요. 더 많이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제작비만 놓고 봤을 때 뉴욕에서 찍었지만 미국 영화로 치면 상당히 저예산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의 경우 저예산 영화에 배우들이 출연했을 때 상업영화하고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접근을 해주어요. 스탭들도 무료봉사까지는 아니었지만 헌신봉사를 했어요.(웃음) 그들이 평소 받는 것에 1/10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참여를 해주었기 때문에 <두번째 사랑>은 탄생될 수 있었어요.

영화감독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나는 멋있는 영화감독이 되고야 말겠어.”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꾸었던 사람은 아니에요.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펼쳐나갈 매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영화를 선택하게 된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다른 매체보다 더 발언의 힘이 센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요. 이런 식으로 유기적으로 점차 영화라는 매체에 다가갔고, 영화인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요.

감독으로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을 꼽으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 중에 본받고 싶은 감독은 이안 감독이에요. 중국에서 저예산 영화를 두 편 만들고 나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후부터는 장르를 종횡 무진하면서 영화를 연출했어요. 할리우드 상업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작가로서 목소리를 잃은 적은 없어요. 그 분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한 번은 시리즈로 몰아서 일주일 동안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섭렵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그 분의 영화에서 언제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사가 있었어요. 굉장히 다른 영화들이고 굉장히 다른 장르라서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를 그렇게 몰아서 보니까 주인공이 울분을 토하면서 말하는 “니가 내 마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이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외로움이나 소통의 문제구나.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다 못해 <와호장룡> 같은 무협영화에서마저 장쯔이가 울분을 토로하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도 엠마 톰슨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드러냈죠. 그것을 보면서 굉장히 존경스러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이안 감독처럼 다양한 장르에 욕심이 많은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에는 하나에요.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추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욕망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회와 교육에 의해서 길들여져서 자기가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지, 실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정말로 힘든 것 같아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기가 힘들고요. 한 여성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을 때, 그리고 그것을 추구했을 때 발생하는 일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화두에요. 주인공이 그런 일에 빠지면서 슬픈 일이 발생하면 멜로영화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면 그건 공포영화가 되는 거겠죠. 소재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장르 자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Source: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