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과 파란 눈의 사랑을 찍다

김진아의 한국과 미국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은 얌전한 제목과 달리 백인 중산층 여자와 한국인 불법체류자 남자의 위험한 사랑을 다룬다. 
 
하정우와 베라 파미가가 출연하는 이 뉴욕판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는 설정의 파격뿐만 아니라 인물의 눈썹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카메라의 돌진이 인상적이다. 이 과감한 스타일로 김진아는 한국의 극장가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상업영화를 선보인다.김진아는 하버드에서 한국문화와 영화를 가르치는 젊은 대학교수이자 영화감독이다. 지금까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그 집 앞>을 연출한 이 사람은 마주 앉은 이들에게 자기 에너지를 망설이지 않고 드러낸다. 겉으로 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자기 홍보에도 주저가 없으며 당당하게 자기 자랑도 한다. 조금 질리는 구석이 있기도 한데, 200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한 여자인지를 알게 된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 미국 유학을 결행한 이후 자기 생활의 내밀한 부분을 일기 쓰듯이 찍은 이 비디오물의 노골성과 파격성은 보는 이를 질리게 했다. 157분 동안 거식증과 폭식의 유혹을 오가는 자신의 몸을 집요하게 기록한 이 영상일기는 보는 사람마저 탈진하게 만든다. 동시에 이 비디오물은 과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자기파괴와 유폐의 이미지들이 가득한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수려하게 집 안 사물을 카메라로 포착한다. 그때 ‘자기 연민보다는 나르시시즘을 택하겠다’던 김진아는 장편 데뷔작 <그 집 앞>을 2003년에 완성했으나 부산국제영화제에 잠깐 공개된 것을 빼고는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여성의 자기 정체 찾기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숱한 예술영화들의 진열대에서 불행하게도 자기 생명을 얻지 못했다. 그런 뒤에 그녀는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예술영화지원작 공모에 신작 시나리오를 출품했고 당선됐다. 
 
“그 소식을 듣고 뉴욕에서 환호성을 올렸다. 그때까지 과연 새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종자돈이 생기니까 비로소 새 영화를 찍게 된다는 실감이 났다.” 한국과 미국의 합작 형태로 계획된 김진아의 신작은 하정우, 베라 파미가 주연으로 지난해 폭염이 한창이던 뉴욕에서 25회차로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거쳐 선댄스영화제에 공개된 후 마침내 한국 극장가에 걸리게 됐다. 김진아로선 처음 상업영화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셈이다. 이 영화가 <두번째 사랑>이다.

시사를 끝내고 충무로 근처 식당에서 만난 김진아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녀는 포커페이스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활짝 웃는 표정과 불안한 한숨 소리가 교차하면서 시시각각으로 얼굴표정이 바뀐다. “이건 상업영화잖아요. 어떤 이들은 감독이 영화 만들면 끝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흥행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건 당연지사 아닐까요?” 비평적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얼굴에 좌절이 깔린다. “벌써 위로하는 건 아닌가요? 블록버스터들이 많긴 하지만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알려질지 기대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는 계속 근심, 한탄, 비관을 쏟아내면서 거꾸로 이 영화가 흥행할 수도 있다는 말을 상대에게 듣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하정우가 홍보에 열심이지만 여주인공 역을 맡은 베라 파미가도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그녀 자신이 한국에 일찍 오지 못한 것에 대해 울면서 속상함을 토로했다고, 신작을 체코에서 찍고 있는데 6월 말에는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때까지 <두번째 사랑>이 극장에 걸려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의 속사포를 쏘아댔다.

뉴욕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솔직히 자기 홍보에 전력하는 김진아의 그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진아는 적극적으로 그런 욕심을 늘 드러내는 유형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난 척 한다고 오해도 받는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친구 만들기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그녀의 성품은 이번 영화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마이클 니먼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것도 김진아의 대시하는 성품 덕분이었다. 한 번 저녁식사를 하고 호감을 나눈 것이 전부인 그와의 인연을 밑천으로 김진아는 파격적으로 싼 개런티에 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에선 설마 되겠느냐고 했지만 김진아가 보낸 메일에 금방 마이클 니먼은 긍정적인 답신을 보냈다. 시나리오를 받고 나선 시간별로 자신의 소감을 적은 메일을 보냈고 마침내 영화음악을 수락한 후에도 조심스럽게 개런티가 많지 않다고 양해를 구한 김진아에게 “그건 내 문제이지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렇게 화통하게 스탭으로 참여한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김진아가 퇴짜를 놓았을 때 감독들과 언쟁을 벌이기로 유명한 이 깐깐한 장인도 꽤 놀랐을 것이다. 김진아의 요구에 맞춰 수정한 음악작업을 끝내고 그는 김진아의 남편이자 이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어바인 대학의 김경현 교수에게 적잖게 놀라고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선댄스영화제에 <두번째 사랑>이 출품됐을 때 그들은 같은 숙소에 머물며 나이 차이를 넘어 친구처럼 놀고 지냈다. 이런 일화를 통해 실력 있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어울려 친구로 놀 수 있다고 대드는 유형의 적극적인 성품을 지닌 김진아의 면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사랑>에서 인상적인 여주인공 소피를 연기한 베라 파미가는 우리에게 <디파티드>로 알려진 여배우다. “베라 파미가를 섭외하려 했을 무렵, 그녀는 메인 스트림 영화에서 떠오르는 존재였다. 모두 파미가를 이 영화에 캐스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고 김진아는 말했다. 프리프로덕션 스탭 대다수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시나리오를 파미가에게 보낸 김진아는 곧 직접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다. 파미가를 만났을 때 대화는 캐스팅 수락 여부가 아니라 여주인공 소피에 대한 공감을 나누는 쪽으로 흘렀다. 

흥미롭게도 베라 파미가는 <두번째 사랑>의 소피와 유사한 인생 내력을 갖고 있었다. 파미가는 프랑스 명문가의 남편과 별 탈 없는 결혼생활을 누리다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로커 출신의 남자와 새 살림을 꾸렸다. 전 남편은 모든 것을 잊을 테니 돌아오라고 말했지만 파미가는 돌아가지 않은 채 새 남자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전 남편과는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면서 파미가는 영화촬영이 없을 때면 뉴욕 인근의 농장에서 오리 떼를 몰며 지낸다. 그녀 자신의 개인적인 이력과 맞물려 파미가는 <두번째 사랑>의 소피에게 강렬하게 동화됐다. “베라 파미가와는 아무런 소통의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나보다 더 여주인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촬영기간 동안 친구가 됐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파미가가 보여주는 연기는 감독 김진아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 은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유복한 한국인 사업가 남편과 사는 주부 소피를 연기하는 그녀는 수태능력이 약해 아이를 갖지 못해 괴로워하는 남편의 고뇌를 덜어주고자 뉴욕에 불법체류하는 한국 남자 김지하와 계약을 맺고 임신을 시도한다. 싸늘하게 이어지는 이들의 육체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희미한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격렬한 애정으로 휘몰아칠 때 소피의 안락하지만 무미건조한 중산층 행복의 허상도 산산조각난다. 
한 여자의 자기 정체 찾기라는 주제는 여기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다뤄지지만 점프 컷과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일관한 스타일 속에서 포착되는 베라 파미가의 얼굴 표정, 손짓, 벌거벗은 가슴과 등, 세세한 주름 하나까지 한 여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들여다보는 듯한 감당 못 할 압도감을 준다. 망원렌즈로 당겨놓고 들어오는, 다른 영화에 비해 1인치 더 치고 들어오는 난폭한 카메라의 존재를 당당하게 받아내는 강력한 기운이 배어나서 베라 파미가라는 여배우의 얼굴 하나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만감이 생겨난다. 
흔히 열연을 한다고 했을 때의 그 배타적인 나르시시즘의 기운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 가운데 천 개의 표정을 지닌 여배우의 실존적 불안과 열망이 스크린 공기 전체를 잠식하는 것이다. 

베라 파미가의 매력을 결과적으로 뒷받침해준 이 거칠고 과감한 스타일은 <두번째 사랑>의 매력을 지탱하는 것이지만 뉴욕 현장에서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영화에선 곧잘 볼 수 있지만 뉴욕 인디영화계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거친 생략적 편집과 들고 찍기 촬영으로 짜인 김진아의 콘티는 스탭들의 반발을 샀다. 촬영 첫날부터 조감독, 라인 프로듀서를 비롯한 주요 스탭들은 이대로는 영화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김진아의 남편이자 프로듀서로 현장에 있는 김경현 교수에게 끊임없이 어필했다. 노조에 가입된 스탭들을 고용해 하루 12시간 근무로 25회차 촬영으로 마무리된 <두번째 사랑>의 현장은 10분이라도 지체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시간과의 싸움에 대한 강박과 뉴욕의 여름 폭염과 스탭들의 보이지 않는 거부감 속에서 엄청난 긴장으로 치러졌다. 

“한국과는 달리 뉴욕에서 영화를 찍을 때 감독은 현장의 모든 스탭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는 한시도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다. 모든 파트와 관련해 바로바로 연출자로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김진아의 현장 지휘 모습을 보고 보통 강단을 지닌 연출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이 영화의 제작사인 나우 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사석에서 말했다. 

자기 앞의 생
어떤 사연을 거쳐 영화가 만들어졌든 간에 결국 평가를 위해 남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비상한 화면 사이즈 연출 감각을 보여주는 <두번째 사랑>에는 단순한 플롯에 심은 세밀한 디테일을 보는 재미로 가득 차 있다. 지하와 소피가 돼지우리 같은 지하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관계를 맺을 때 소피는 자신의 속옷을 곱게 개어 비닐봉지에 담는다. 자신의 몸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외간 남자의 흔적이 남는 것을 꺼리는 이 백인 여자에게 지하 역시 유쾌한 기분일 리가 없다. 관계를 맺으면서 지하는 자신에게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무슨 눈이 이렇게 파래?” 그들은 당연히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들이 소통하는 것은 각자 간직한 상처를 서로 드러내어 생채기를 내는 일련의 폭력을 통해서다. 그 과정이 내밀하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표현되는데도 숨 막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역시 연출과 연기 덕분이다. 여자의 정체를 슬쩍 파고드는 남자의 질문에 “담요를 새로 사야겠어요”라는 일상적인 말로 여자가 둘러칠 때, 그 평범한 말의 오감 사이에 끼어드는 눈빛의 마주침과 외면과 정적과 닿을 듯 스쳐지나가는 상처의 공명은 문자로 언어화될 수 없는 시각적 서술의 어떤 경지에 이른다. 

뉴욕에서 불법체류자로 일하면서 자신보다 상류층인 백인 여자에게 씨내리 역할을 하는 한국 남자가 상대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공격하는 것뿐이다. 섹스라는 관계의 외피에서 백인 여자 소피는 남자의 정액을 받는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자신을 밀봉하려 든다. 그들이 차이나타운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설전을 벌일 때 우아하게 퇴장하려는 그녀에게 지극한 모욕을 전해준 남자는 비참하게 달아난 여자가 차이나타운 골목 어딘가에서 마구 울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로소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걸 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나에 대해 모르면서”라고 말하며 우는 소피 역의 베라 파미가의 연기는 남자의 연민을 사는 그런 지점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오랜 고독과 상실감으로 온몸의 신경세포가 막혀 있는 자의 절해고도의 심정을 드러낸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자들의 동병상련을 묘사하는 김진아의 연출은 세련되면서도 내밀하다. 그들이 비로소 마음을 서로 약간 열었을 때 섹스 장면 묘사를 보면, 육체적인 것에서 마음을 담아내는 수준의 연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탄복할 사례가 될 만하다. 허름한 아파트의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서로 몸이 함부로 닿을까 저어하면서 서서히 몸을 열고 망설이면서 빠져드는 육체와 마음의 합일상태에 이르는 것은 남녀관계의 작은 기적이자 동시에 파국이다. 그들은 이후 백인 중산층 여자와 한국인 불법체류자라는 남녀 사이의, 인종 사이의, 계급 사이의 매우 위험한 경계를 넘는다. 

상투성과 겨루는 상업영화의 숙명 속에서 <두번째 사랑>은 1인치 더 들어가는 클로즈업의 생생함으로 증명하듯 개인의 내면을 파헤치는 것으로 생명을 얻는다. 경건한 가족모임 파티에 불쑥 끼어드는 불온한 연애의 판타지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영화 종반의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점프컷은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표현도구다. 거듭 점프하면서 무의식의 열망의 단계를 모방하려는 듯한 영화의 호흡은 허다한 대화 장면들에 끼어드는 침묵과 정지의 순간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이 일탈의 연대기에 섬세한 배려의 시선을 입힌다. 우리는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이 위험한 연애의 실행자들인 주인공들에게 무작정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망설임과 두려움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적극적인 공범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명쾌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일방적인 행복이나 희망이라는 것도 없고 다만 살아낸다는 것의 약동하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소피가 잔잔히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아들과 함께 놀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것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둔 채 카메라는 소피의 모습을 지극히 바라볼 뿐이다. 클로즈업을 버텨내는 기운을 타고난 배우 베라 파미가는 여기서도 관객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다. 거기서 관객의 상념은 더 뻗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진아의 연출은 거기까지만 안내한다. 

영화 속의 다른 대목에서 바깥 유리창을 통해 샤워를 하는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샤워를 하다 말고 문득 소피는 겨드랑이를 쳐들어 자기 몸의 냄새를 맡는다. 끊임없이 주변을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을 보이는 정숙한 현모양처이지만 불안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소피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앞에 솔직해지는 그런 여자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한참동안 자신에게 집중하다가 아참, 당신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묻는 당당함이 이 영화의 후반부에 묘사되는 소피의 캐릭터에게서 풍겨나는 것이다.

그건 결국 이 영화의 감독 김진아의 또 다른 자아가 스며 있는 캐릭터의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두번째 사랑>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결합이라는 보편적인 위반의 러브스토리를 계급과 인종을 뛰어넘는 플롯에 녹여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는 분방한 스타일로 치고 들어간 한 여성 감독의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사회에서 백인 여자와 한국 남자의 육체적 관계를 드러내고 묘사한 이 러브스토리를 수용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중산층 도덕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모럴을 찾는 여성 주인공을 용서하지 못할 남성 관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두번째 사랑>은 거꾸로 꽤 용감한 영화이자 오래 준비한 자의 손맛도 있는 이미지의 정찬 코스가 될 것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씨받이’를 뒤집어놓은 여성영화죠

여성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혹시 풍채 좋고, 입담 좋은 아줌마거나 머리 짧고 중성적인 외모가 떠오르는가? 21일 개봉한 <두번째 사랑>의 김진아(35) 감독은 이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다. 여성스럽고 젊으며, 체격도 왜소하다. “여자감독이먼 덩치 크고 연륜이 있다고 으레 생각하죠? 그래서 한때 군인처럼 머리를 깎기도 했는데. 그리고 저 젊은 감독 아니에요. 오히려 늦었죠. 남자 감독들 대부분 20대부터 활동하고, 주목받잖아요. 삼십이 훌쩍 넘었는데….”

김진아. 그의 이름이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세대 감독이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동안 자신의 일상을 담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그 집 앞> 같은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얼마 전 니콜 키드먼, 톰 크루즈 등 할리우드 배우와 샘 레이미, 마이클 만 등의 스타감독을 보유한 최고의 에이전시인 시에이에이(CAA)와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하버드대 시각예술학부 교수다.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상업영화 <두번째 사랑>으로 시험대에 오른다. 한미합작으로 만들어졌는데, 국내에서 먼저 개봉하게 됐다. “평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에요.” 19일 만난 김감독에게선 자신감이 배어났다. 각각 <디파티드>와 <용서받지 못한 자>로 미국과 한국에서 뜨고 있는 베라 파미가와 하정우가 주인공으로, <밀양>의 이창동 감독이 제작자로, <피아노>의 마이클 니만이 음악감독으로 나섰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사랑>은 “섹스를 두고 거래를 시작한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뻔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하룻밤 대가로 100만달러를 받고 아내를 빌려주는 <은밀한 유혹>(1993)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큰 실수다. 이 진부한 소재에서 그는 ‘여성의 삶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끄집어냈다. 올해 초 선댄스영화제에서도 “여성의 심리묘사가 간결하면서도 섬세”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소피(베라 파미가)는 임신능력이 없는 남편에게 아이를 안겨주려고 외모가 닮은 한국인 청년(하정우)에게 ‘한번에 300달러, 임신하면 3만달러’라는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섹스의 주도권 역시 소피가 쥔다. 소피는 남편에게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울며 매달리지 않는다. 안나 카레리나처럼 기차에 몸을 던지지도 않는다. “누구와 맺어졌든, 그가 원하는 삶과 행복을 스스로 찾았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김 감독은 이 영화의 영감을 그가 존경하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 받았다고 한다. “<씨받이>는 남성적 시각에서 그려진 영화잖아요. 대를 잇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씨받이가 되고, 아이를 뺏긴 씨받이는 절규하다 자살하는 것이요. 여기에서 여성이 선택하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두번째 사랑>은 철저하게 <씨받이>와 대립되는, 색다른 시각을 가진 여성영화로 봐주셨으면 해요.”

<두번째 사랑>은 과연 누구의 이야기에 가까울까? 김감독의 이야기는 아니다. “베라가 저를 처음 봤을 때 ‘자기 얘기’라고 하더라구요. 실제 베라는 모든 것을 가진 남편과 잘 먹고 잘 살다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영화가 더 빛났죠.”

다음 작품은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하는 심리 스릴러물 <더 젤러스 원>(가제)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영화를 찍는 일을 하는 게 거의 ‘살인적 스케줄’이라고 한다. “8월부터는 교수직을 접고 감독만 할 겁니다. 시나리오 작업 중인 차기작은 이웃에 사는 두 여자가 서로 질투하면서 벌어지는 심리게임을 다뤄요. ‘여자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탐구한다는 면에서 <두번째 사랑>의 연장선이겠네요. 그동안 미국에서 주로 작업을 했는데, 제의만 온다면 언제든지 한국에서 작품을 만들 겁니다.”

Source: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2...

<두번째 사랑> 김진아 감독(2)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자”

남성감독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일단 남성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만약 남자감독이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면,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이것 하겠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섰는지 물어보기는 했겠지만 말이에요.” 남성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만약에 받아서 만들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외면풍경에 충실한 멜로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소피의 내면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 것에 반해서요.

소피와 앤드류의 초반 베드신 장면은 다소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2세 앤드류에게 금발의 8등신 미녀 소피는 전시용 와이프의 의미가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의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피가 앤드류한테 끌렸던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취욕구 때문이었을 거예요. 반면, 소피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추구하기를 두려워했어요. 

그런 앤드류가 아기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모든 기반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번째 사랑>의 첫 장면이 앤드류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하잖아요. 그때 앤드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남성상의 타격을 스스로 받아요. 사실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임종 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가장 컸을 것 같아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런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하는 정사 신이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성적인 욕망을 그리는 것보다는 앤드류가 표현해야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앤드류는 장례식 장면에서도 굉장히 차갑고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는 사람처럼 보여지잖아요. 소피는 그런 앤드류의 슬픔을 이해하기 때문에 현재 마음을 표현해주기를 바라지만 둘 사이의 열정과 애정은 이미 식어 버린 상태에요. 앤드류한테는 어느 정도 폭력성이 가미된 ‘소리없는 절규’와 같은 정사신이었기 때문에 관객들한테는 건조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극중 두 남자 지하, 앤드류 중에 한 명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지하죠.(웃음) 제가 가지고 있는 사랑관이나 애정관이나 인생관이 시나리오 속에 묻어날 수 밖에 없잖아요. 제가 <두번째 사랑>에서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였거든요. 모든 삶의 원동력은 몸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고요. 극중에서 지하는 소피의 삶을 변화시키는 메신저 역할을 사실은 하는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지하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겠죠.

배우 하정우는 어땠나요?
정말 정우 씨는 어떤 칭찬을 해도 모자라지 않는 배우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정우 씨를 너무나 믿었기 때문에 사사건건 개입을 하지 않았어요. 배우 하정우가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소외감을 통해 지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표현해 낼 수 있도록 자극은 했지만 말이에요. 하정우가 지하라는 캐릭터로 되어주기를 바랐을 뿐이지 촬영장에서 꼬치꼬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라고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저의 믿음이 오히려 정우 씨한테는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신뢰 안에서 정우 씨는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대사가 많은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대사는 영어대사로 해야 하고.(웃음) 그런 것들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를 해준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가 하정우에 대한 연기칭찬을 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지하 역을 한 정우씨의 연기에 리액션을 했을 뿐이다.” 베라 파미가라는 배우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하정우 씨는 현장에서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분출했어요. 

미국 촬영현장은 어땠나요?
미국 촬영현장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이 빨라요. 노조 때문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촬영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25회 차 만에 촬영을 마쳤어요.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해서 컷 수를 줄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웃음) 하루에 평균 34컷까지 소화해 내야 했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결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결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불륜영화의 가장 큰 맹점을 하나 꼽는다면 결말을 짓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에요. 불륜영화는 어떻게 놓고보면 자기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성장영화로 볼 수 있거든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파국을 맞게 되는 과정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다음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같아요. <언페이스 풀> 같은 경우도 어중간하게 열린 결말로 끝내버리잖아요. 불륜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아요. 여자가 파국을 맞던가, 아니면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서 남편과 대충 맞추어가면서 사는 비참한 결말. 그런데 저는 둘 다 용납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극중 소피라는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소피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점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그것을 관객이 느껴주기를 바랬어요. 소피의 아기는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기 때문에 다른 어머니하고는 다르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 여자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사진 속 지하의 여자친구는 누구인가요?
그 친구는 윤주희 씨라고요. 싸이더스HQ에 소속된 배우라고 알고 있어요. 처음부터 연기가 필요한 역은 아니었지만, 존재감이 있어야 하는 역이었기 때문에 여러 여배우의 사진을 받았어요.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은 지하의 과거를 그 사진 하나로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마스크가 굉장히 중요했고요. 또 소피가 그 사진을 봤을 때 지금 이 사람이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한 때는 행복한 삶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소도구였기 때문에 사진 선정에 있어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죠.

바뀐 영화 제목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요. 일단 한국관객들을 위해서는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영어권에서 <네버 포에버>라는 제목은 큰 울림이 있는 제목이지만, 한국에서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무슨 뜻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애매모호한 뉘앙스를 가진 제목인 게 사실이잖아요. 원제가 직역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제목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두번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은 소피의 마음을 <두번째 사랑>이라는 한국식 제목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사랑>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번째 사랑>은 한미합작이고 베라 파마기라는 할리우드 배우가 나왔고 하정우라는 멋진 배우가 영어대사를 소화해냈고 뉴욕에서 촬영을 했고 이런 여러가지 외부적인 이슈거리가 많잖아요. 이런 것들 보다 제가 봐주셨으면 하는 것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적인 울림이에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에게 마음을 준 경험이 있잖아요. 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을 하잖아요. 그것이 짝사랑이건 쌍방향의 사랑이건. 그런 것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관객 여러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아요. 그냥 마음을 열어두시고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편한 마음으로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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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랑> 김진아 감독(1)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한미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김진아 감독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그 집 앞> 등의 작품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는 실력파 감독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극영화 연출과 한국영화 이론 등을 강의하고 있는 그녀는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진심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어 기자를 감동시킨 김진아 감독은 진심이 느껴지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한 명이라도 자신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고, 더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주파수를 가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배우들을 미리 생각해두셨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어요. 작가와 연출을 겸하는 사람으로서 시나리오 쓸 때는 영화는 감독의 것이고, 촬영에 들어가면 영화는 배우의 것이고, 편집이 들어간 후부터는 영화는 관객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소피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지만 정말 맑은 느낌을 가진 헌신적인 느낌의 여자일 거야” 라고 설정해놓고 그려나갔어요. 지하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리려고 했고요.

시나리오를 쓸 때 캐스팅의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그런 우려를 당연히 했었죠. 다행히 저희 캐스팅 디렉터가 대단히 능력이 있는 분이라 많은 여배우들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를 많이 알고 있더라도 영화랑 어울리지 않는다면 안 되는 거잖아요. 노출 신이 많고, 어마어마한 감정의 기복을 오가야 하지만 대사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배우 선정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헌신적인 어머니 상에서 시작했다가 자기 욕망을 찾고 삶을 찾는 여자의 모습을 폭넓게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소피’ 역할에 어울릴만한 배우를 찾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여배우가 필요했거든요. 많은 배우를 추천을 받았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어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기존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배우가 필요했어요. 관객들이 ‘왜 저런 여자가 한국 남자와 저러고 있어’ 이런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웃음) 연기력이 뒷받침되면서도 마스크는 신선해야 했기 때문에 여배우 선정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참에 우연히 <절망의 끝에서>라는 영화를 보게 됐어요. 그 영화를 통해 베라 파미가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기 때문에, 그 배우가 어느 인지도가 있는 배우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어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준 신들린 연기는 저로 하여금 “저 여자 원래 저런 여자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어요. 마약 중독자로 나오는데 너무 리얼하게 연기를 해서 정말 그런 여자로 의심했다니까요.(웃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베라 파미가가 주연한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너무 놀란 게 영화마다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알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캐스팅 디렉터한테 바로 전화를 했죠 “정말 이 배우랑 같이 일하고 싶다.” 캐스팅 디렉터가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1순위에 있는 배우라고 말했을 때 “어머 나는 왜 몰랐지?”라고 내 자신을 자학했어요.(웃음) 캐리비안의 배 안에서 휴가 중인 베라 파미가가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고, 휴가가 끝난 뒤 뉴욕으로 곧장 와서 저를 만났어요. 다른 영화를 찍으러 러시아로 가기 바로 당일에 시간을 내서 저를 만난 거에요. 카페에서 만났는데 소피 역을 이미 하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온 것 같았어요. 저를 보자마자 “소피 역의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할 거야” “그 신에서 어떻게 감정을 처리하면 좋을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서, 그녀를 보는 순간 “내가 그토록 찾던 소피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시나리오 쓸 때와 현장에 있을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하세요?
현장에 있을 때요. 비교가 안 돼요.(웃음) 시나리오 쓸 때는 나름 예술가의 마음을 가지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까 괴로운 일도 많고 외로워요. 사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하는 후반작업도 만만치 않게 괴로워요. 왜냐하면 밀폐된 공간에서 배우와 스탭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써준 결과물을 가지고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막중해서 괴롭고 힘들어요. 반면, 현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어요. 

정말 “나는 이 일을 재미있어서 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배우들과 일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요. 제가 머리 속에서 생각했던 일들을 그림으로 현실화되는 것을 볼 때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고쳐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겁고요.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에서 연출해 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웃음) 사실 미국 CAA에서 보내준 시나리오들이 할리우드에서 진행 예정에 있는 큰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거든요. 크기가 큰 만큼 비슷비슷한 면도 많고요. 왜냐하면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작업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적이 있어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였는데, 안젤리나 졸리가 이미 캐스팅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저보다 이틀 먼저 시나리오를 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기회가 돌아갔어요. 당연히 그런 거장 감독과 경쟁을 할 수 없는 거니까 깨끗하게 물러섰죠.(웃음) 그리고 나서 생각했죠.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배우까지 투입된 영화는 거장 감독한테 뺏기기가 쉽구나. 그때부터 파라마운트가 개발 단계부터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한테는 빠른 길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을 뉴욕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저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많은 인종들이 혼합이 되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안에서 굉장히 분리가 되어있는 도시 또한 뉴욕이라는 사실이에요. 계급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업퍼 이스트 사이드라는 곳에 가면 주류사회로 편입하고 싶은 사람들을 쉽게 접하게 돼요. 그리고 차이나타운에 가면 여기는 중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야말로 오리지널한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서로를 곁눈질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사람들의 시선 교환에서 저는 늘 섹시함을 느꼈어요. 개발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 같은 곳을 평생 가 볼 일이 없는 금발의 부유한 백인여성이 지하라는 남자를 쫓아갔을 때 그 풍경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다가 나온 곳이 뉴욕이라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문화적, 인종적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으로 뉴욕을 선택하게 되었죠.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요?
저도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요. 2~300백만 불 사이라고 알고 있어요. 더 많이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제작비만 놓고 봤을 때 뉴욕에서 찍었지만 미국 영화로 치면 상당히 저예산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의 경우 저예산 영화에 배우들이 출연했을 때 상업영화하고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접근을 해주어요. 스탭들도 무료봉사까지는 아니었지만 헌신봉사를 했어요.(웃음) 그들이 평소 받는 것에 1/10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참여를 해주었기 때문에 <두번째 사랑>은 탄생될 수 있었어요.

영화감독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나는 멋있는 영화감독이 되고야 말겠어.”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꾸었던 사람은 아니에요.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펼쳐나갈 매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영화를 선택하게 된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다른 매체보다 더 발언의 힘이 센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요. 이런 식으로 유기적으로 점차 영화라는 매체에 다가갔고, 영화인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요.

감독으로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을 꼽으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 중에 본받고 싶은 감독은 이안 감독이에요. 중국에서 저예산 영화를 두 편 만들고 나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후부터는 장르를 종횡 무진하면서 영화를 연출했어요. 할리우드 상업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작가로서 목소리를 잃은 적은 없어요. 그 분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한 번은 시리즈로 몰아서 일주일 동안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섭렵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그 분의 영화에서 언제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사가 있었어요. 굉장히 다른 영화들이고 굉장히 다른 장르라서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를 그렇게 몰아서 보니까 주인공이 울분을 토하면서 말하는 “니가 내 마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이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외로움이나 소통의 문제구나.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다 못해 <와호장룡> 같은 무협영화에서마저 장쯔이가 울분을 토로하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도 엠마 톰슨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드러냈죠. 그것을 보면서 굉장히 존경스러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이안 감독처럼 다양한 장르에 욕심이 많은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에는 하나에요.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추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욕망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회와 교육에 의해서 길들여져서 자기가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지, 실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정말로 힘든 것 같아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기가 힘들고요. 한 여성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을 때, 그리고 그것을 추구했을 때 발생하는 일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화두에요. 주인공이 그런 일에 빠지면서 슬픈 일이 발생하면 멜로영화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면 그건 공포영화가 되는 거겠죠. 소재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장르 자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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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몸이다

<두 번째 사랑>의 김진아 감독

“미국의 에이전트 CAA와 계약을 맺었고 파라마운트사와 새 영화도 준비 중이다. 이제 전업감독 해야지. 3년째 강의했던 학교 수업도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끝낼 예정이다. 감독이 연출로 밥 먹을 수 있으면 선생 노릇 안 해도 되지 않겠나. (웃음)” <두번째 사랑>을 만드는 동안 김진아 감독은 몸이 몇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살았다. 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하버드대학 영상예술학부 초빙교수로서 매 학기 두 과목씩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해야 했다. 여름방학 동안 25회차로 촬영하고 학기 시작한 뒤로는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강의하고, 목요일에 뉴욕으로 날아가 편집하고, 다시 주말에 보스턴으로 오는 살인적인 일정을 보냈다. 고된 땀이 빚어낸 결과물은 결이 고운 멜로드라마로 나왔다. 백인 여성이 두명의 한국계 남성 사이에서 자기의 욕망을 찾는 내용이다. 한·미 제작사의 실험적인 합작품이자 뉴욕 독립영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진아 감독 편에서 본다면, 1950년대 미국의 가족멜로드라마와 한국의 50, 60년대를 풍미한 통속멜로드라마가 만나기를 바랐던, 더글러스 서크와 신상옥의 결합을 꿈꾼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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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마운트와 계약한 새 작품은 어떻게 돼가나.
개발 중이다. 선댄스에서 5일 동안 여섯개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개발팀을 만났고 그중 파라마운트를 선택한 건데, 에이전트를 통해서 스크립트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었다. 그중에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여자주인공이기도 했고. 누가 붙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젤리나 졸리라고 하기에 무조건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 뒤 에이전트에게 전화가 온 거다. 이틀 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가져갔다고. 정말 좋은 스크립트는 그런 사람들이 훔쳐가는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하고 경쟁할 순 없지 않나. (웃음) 그래서 아예 그럴 바에야 초기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달라고 했다. 여자 두명이 주인공이고, 연기파 여자배우 두명을 붙일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다. <두번째 사랑>의 히치콕 버전이랄까. 평범한 가정주부 옆집에 굉장히 예쁜 독신 여성이 이사오면서 그 둘의 정체성이 바뀌어간다는 묘한 사이코스릴러다. 지금 작가하고 초고를 같이 써가는 중이다. 한국말로 하면 <질투하는 여인>(The Jealous Woman) 정도 될 것 같다. 파라마운트에서 생각하는 건 나오미 왓츠와 니콜 키드먼인데, 그 정도 스타를 캐스팅하려면 개발 단계에서부터 배우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거라 지금 그 작업 중이다. 올해 가을까지 초고를 완성하고, 겨울쯤부터 구체적인 캐스팅에 들어가려고 한다.

선댄스에서는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건 민망하지만(웃음), 그랬다. 원래 나는 시사회장에 메모지와 수첩을 들고 가서 관객의 반응을 적는다. 여기서 웃고 저기서 우는구나, 이런 걸 체크한다. 그런데 선댄스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몰입해서 보니까, 그렇게 체크하는 행동 자체가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만뒀다. 메인 극장에서 상영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는데 나 같은 냉혈한도(웃음) 눈물이 핑 돌고 한국식으로 90도 인사하게 되더라.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더글러스 서크 영화처럼 정석대로 만든 거라서 그런가보다.

처음에는 호러영화를 구상했다고 들었다. 그러다 하버드 초빙교수로 갈 즈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알고 있다. 그 시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이 있었나.
나는 지금도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르는 호러와 멜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 화두는 결국 여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일을 알고 그걸 할 때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것인데, 그때 무서운 일이 생기면 호러고 슬픈 일이 생기면 멜로인 거다. 그때는 호러가 맞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버드에 갔을 즈음, 내가 미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미국이 별세계로 보였다. 미국 지식인층의 심장부 역시 골수 백인사회라는 걸 깨달았다. 그곳에서 내가 아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던 곳은 차이나타운이었다. 보스턴 차이나타운은 뉴욕 차이나타운하고 또 달라서 되게 우울하다. 거기서 아시아 남성들이 완벽하게 무성화한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여성의 욕망 외에 아시아 남성의 성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생각하게 된 거다. 그게 두 남자 캐릭터가 나온 계기인데, 소피(베라 파미가)의 남편인 앤드루(데이비드 맥기니스)는 그나마 성적인 존재로 여겨질 만한 전문직 아시아 남자지만 그 사람이 사실은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불법체류자인 지하(하정우)야 말로 꿈틀거리는 생명력과 건강한 몸을 가진 남자라는 두 극단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내가 두 번째 학기부터 한국영화 강의를 맡게 되면서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원래 좋아했고 세미나 형식이라 부담없이 맡게 되었는데, <하녀> <자유부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한국 고전영화들을 프린트로 새로 보면서 멜로라는 장르가 이렇게 대단하구나, 느낀 거다. 그 전까지 여자의 욕망을 호러로 풀어보려 했다면, 방향을 바꿔 멜로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특정한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장면화한 것이 있나
무의식적으로 보자면 <지옥화>에서 최은희가 피아노 치는 장면. <자유부인>에서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장면. <자매의 화원>의 의상 컨셉. 그리고 <씨받이>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비즈니스로 시작한 것이 사랑이 된다는 것.

소피 역의 베라 파미가는 금발의 백인 여배우인데도 이상하게 성적인 면보다 모성애가 더 강조되어 보인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는 좋은데, 말하자면 베라는 백지 같다. 백치가 아니라. (웃음) 주변 색에 따라 눈동자 색이 바뀌는 희귀한 눈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배우로서 베라 자신도 그렇다. 완전히 변신이 가능한 배우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소피 캐릭터는 부잣집 마나님 느낌이 좀 있었는데, 베라를 보는 순간 순진한 매력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굳혔다. 미국은 그런 캐릭터 내용을 상의할 때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배우와 직접 한다. 되게 똑똑한 친구인데 할리우드에서 여자배우들이 섬세하지 않게 그려지고 맡을 역할이 많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다. <디파티드> 때에도 각본에 불만이 많았고, 마틴 스코시즈도 그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영화에서 어떤 자기 대사는 자기가 쓰기도 했으니까. 마틴 스코시즈가 그걸 인정해줬다. 나하고는 몹시 잘 맞아서 할리우드에서 그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노출신도 아주 편하게 찍었다. 복도에서 지하와 소피가 섹스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원래 없던 장면이다. 그런데 베라가 “여기서는 팬티 내리고 엉덩이에 키스 한번 해줘야 감정이 산다”고 해서 들어간 장면이다.

누가 봐도 이전까지의 작품이 개인적인 심리의 심연을 보여준 거라면 이번 영화는 대중적인 장치를 많이 고려한 영화다.
일단 나 개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고 해야겠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면 왜 그런 말하지 않나. “모든 여자애들에게는 자기 발가락 자기가 찍으면서 좋아하는 때가 있다”고. 내 생각에 여자는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자기 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그때 대처할 수 있는 건 나르시시즘밖에 없다. 우선 자기를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나도 많이 헤맸던 때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나 <그 집 앞> 만들던 시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심만만해서 이 세상에 내 자리는 어디인가 고민하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서른 넘어가면서 든 생각은 나는 여자고 영원히 유목민이라는 거다. “어차피 위대함은 그들(남성)의 것이니까”라는 말을 자주 하는 선배도 있다. 동의한다. 그러면서 나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어떤 기계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관심이 없어졌다. 또 한 가지는 직장 생활하면 왜 사람이 건강해지는 면이 있잖나. 3년 동안 학교에서 일하면서 시간적으로 고생하다보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다 잊었다. 여자감독이 갖는 어떤 한계가 있다. 자기를 투사하려는 자전적인 성향을 못 벗어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작품도 개인적인 나하고는 상관없는 스릴러다.

방법론은 바뀌었겠으나 화두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의 욕망이 언제나 화두다. 다만 <그 집 앞>의 두 주인공 가인과 도희가 겪는 몸의 여행, 말하자면 임신, 낙태, 새로운 사람에 대한 성욕 등이 두 사람에게 양분되어 있었다면, 이번에는 소피라는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는 느낌이다.
맞다. 아마 그것도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지면서 생긴 것 같은데, <그 집 앞>까지는 영화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거의 없지 않나. 자기 자신과의 관계만 있을 뿐. 그런데 그걸 관계 안에서 풀게 되면서 한 여자로 합쳐지고, 대신 두 남자가 생긴 것 같다.

아시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음 백인 남성 둘을 배치하는 영화의 설정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을까 추측해봤다.
그러면 아마 지금과 다른 영화가 됐을 거다. 이 영화에서의 미학적 전략이 있다면 모든 장면에 역설이 들어갔으면 하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내러티브도 남편에 대한 희생이 남편에 대한 배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또 성모 마리아가 되고 싶은 욕망이 창녀로 전락하는 것이고. 그 역설의 일환 중 하나가 미국에서 가장 주류라 할 수 있는 백인 여성이 아시아 남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었다. 백인 여성이 아시아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그렇게 오래 미국에 살았어도 두세 커플 이상 본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상식을 뛰어 넘는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미국사회에서 마이너리티는 사실 앤드루인데 그의 집안에서 마이너리티는 오히려 소피다. 만약 아시아 여성과 미국 남성이었다면 그런 느낌이 나기 어려웠을 거다. 아시아 여성은 전세계에서 가장 하층계급이니까. 힘의 전복을 줄 수가 없다. 또 한 가지는 아까 말한 것처럼 아시아 남성의 무성화한 몸에 섹스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몸의 사랑이 정신의 사랑을 넘어서는 이야기라는 게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몸에 대한 화두는 앞으로도 본인에게 중요할 것 같다. 여성의 환경이나 사유에 대해 발언하는 방법보다는 늘 여성의 몸에 대해 더 중요하게 말한다.
사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몸이다. 비록 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내가 세상과의 접점을 찾으려고 할 때 내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치열하게 파냈던 게 몸이라는 부분이다. 여자라는 문제를 각인하게 하는 건 결국 몸이니까. 몸에서 시작하지 않는 혁명이나 사유는 의미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너무 투사 같은 말인가? (웃음)

영상의 결이 곱다. 촬영은 누가 했나?
매튜 클락이라는 사람인데 이 작품으로 입봉했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메인 상업영화지만 미국에서는 저예산영화다보니 스탭을 구하기가 좀 힘든 경우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친구는 사람 얼굴을 찍는 데 따듯함과 애정이 느껴지게 하는 재주가 있어 같이 일하게 됐다. 내가 원하는 게 아주 뚜렷했기 때문에 그걸 잘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고. 같이 만나서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보니 말도 잘 통했고.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 나오자마자 갑자기 급부상해서 지금 잘나가고 있다. 사실은 이런 면도 있었다. 베라가 <조슈아>를 끝내고 되게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촬영장에서는 치어리더가 돼서 기쁘게 해줘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이 촬영감독이 되게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하고 같이 촬영장에서 코미디 복식조가 돼줘야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감독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작가지만 촬영장에서는 배우들이 잘 놀게 여건을 만들어주는 치어리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 합작영화의 연출자로서 차후에 이런 시도를 하려는 연출자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을 것 같다.
이런 건 사실 제작자가 답해야 할 말이긴 한데…. 아, 이런 걸 말하면 좋겠다. 베라와의 인연으로 마틴 스코시즈를 알게 되어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그 사람이야말로 엄청난 거장 아닌가. 안 어울려 보여도 내가 의외로 그 사람 영화를 좋아한다. (웃음) 그런데 그 노련한 거장이 식사 자리에서 꺼내는 얘기가 내가 영화 찍으면서 겪는 고충과 어찌나 똑같던지. 잭 니콜슨은 스탭들이 몹시 어려워해 연락하기를 꺼리는 통에 자기가 매번 연락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는 말이나, 영화 이거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하는 말이나. (웃음) 영화란 크기만 다르지 어디가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뉘앙스와 구체적인 예의범절이 다를 뿐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물론 규모나 까다로운 법적 문제들이 더 있긴 하지만 사람을 중요시해야 하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Source: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69...

한미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연출한 김진아 감독

21일 개봉하는 한·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의 김진아 감독(33·사진)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나는 순간 선입견은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첫 인상은 부드러웠고 말투 역시 그랬다.

“남성의 법, 권위가 아니라 여성의 자비, 연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겨요. ‘여성의 남성화’가 아니라 ‘남성의 여성화’가 이뤄져야죠.”

김감독은 국내보다 해외에 뿌리를 박고 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하버드대에서 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사이 만든 ‘그 집 앞’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등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베라 파미가, 하정우 주연의 한·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은 그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두번째 사랑’의 촬영 현장 분위기도 그의 스타일답게 시종 화기애애했다. ‘감독의 카리스마’ 따위는 찾기 힘들었다. 고성 한 번 없는 게 스태프와 배우가 마치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영화 ‘피아노’의 음악으로 유명한 마이클 니만이 참여한 것도 김감독의 배경과 이런 부드러운 섭외 덕택이었다. “그런 유명한 양반이 음악을 맡아주겠어?”라며 회의하던 사람들도 놀랐다. 영화 음악의 장르는 물론 현대음악에서도 거장급으로 통하는 니만은 국내 영화 음악가들보다도 싼 개런티를 받고 참여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다지 부드럽지 않다. 통속적인 불륜 드라마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결정적인 곳에서 균열을 보인다. 성공한 미국의 한인과 결혼한 백인 여성 소피가 주인공. 보수적인 기독교도 남편과 그 가족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를 가지려 하지만 남편은 수태 능력이 없다. 이에 소피는 남편과 닮은 한인 불법 체류자 지하에게 돈을 지불하고 관계를 맺는다. 다분히 건조한 둘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발전한다.

스토리에 대해 찬반이 엇갈릴 것 같다는 지적에 “싫어하는 이유도 소중하다. 모두가 좋아하거나 모두 반대하는 영화는 싫다. 내 영화가 ‘뭔가 긁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다”고 지론을 피력했다. 

벌써 그에겐 다음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력 에이전시인 CAA와 감독 계약을 맺고, 차기작을 메이저 스튜디오인 패러마운트에서 작업한다. 내년 말 공개될 차기작은 전적으로 할리우드 자본, 배우에 의해 촬영될 예정이다. 

Source: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

‘두번째 사랑’ 첫 한미합작영화 감독 김진아

불륜은 닳고 닳은 소재다. 친한 친구의 남편과 바람피우는 뻔뻔한 여자의 이야기가 TV 앞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는 요즘 영화 ‘두 번째 사랑(21일 개봉·18세 관람가)’이 풀어 놓을 보따리는 어쩌면 식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계 변호사와 결혼한 백인 여성 소피(베라 파미가)가 임신을 조건으로 불법체류자 신분의 지하(하정우)와 계약 관계를 맺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사뭇 파격적이다. 게다가 남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이가 필요하다는 여자는 원하는 아이를 가진 뒤에도 두 번째 찾아온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관객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연출을 맡은 김진아(34) 감독의 말대로 현모양처로 살아온 소피가 “어머니가 되는 순간 성에 눈을 떠 창녀로 전락하는” 설정도 그렇거니와 남편을 배신한 여자가 받아야 할 고통스러운 결말도 없다. 여자는 대신 ‘위험한 사랑’을 통해 삶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불륜을 통한 여자의 성장인 셈이다.

“고전영화 ‘자유부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김 감독은 불륜여성에 덧씌어진 고정관념을 뒤집고 싶었다고 했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예요. 두 번째 사랑이 아니라 그녀가 찾은 두 번째 삶에 방점을 찍은 영화죠.”

다큐멘터리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그집앞’으로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첫 한·미합작으로 탄생된 영화는 뉴욕에서 올 로케이션 됐으며 올해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한국배우 하정우와 파란 눈의 금발 여배우 베라 파미가의 조합은 묘한 긴장감을 안겨 준다. 미술을 전공한 감독답게 영상은 세련됐고,‘피아노’의 음악감독 마이클 니먼이 빚어낸 현악 4중주 선율은 스크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몸이 가니 마음도 갔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새로운 포장지에 쌌을 뿐이라는 혹평도 내놓았다. 김 감독은 “이런 반응들이 나온다는 게 너무 재미있다. 내 영화가 감정적인 뭔가를 긁고 있다는 것 아닐까.”라며 오히려 들뜬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 불륜 영화에서 결말은 두 가지였죠. 무릎 꿇고 싹싹 빌어 다시 남편 밑으로 들어가 조신하게 살던가, 아니면 ‘안나 카레리나’처럼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처절하게 파멸하던가. 저는 이런 것들을 전복시키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소피가 행복하다는 것.“관객들은 그녀가 지금 누구와 살고, 아이가 누구의 아이일까를 궁금해 하겠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가 진짜 원하는 삶을 스스로 찾았다는 것이 중요하죠. 지하와의 사랑은 통과의례일 뿐이죠.”

차기작은 심리 스릴러물. 파라마운트사와 함께 작업한다.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이름을 떨친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류 시장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자각하는 여성을 다룰 것이란다. 타이완 출신으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리안 감독이 그녀의 역할모델이란다.“영국 클래식에서부터 미국식 서부극, 중국 무협 등 어떤 장르에서건 그 안에 항상 억눌린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아요. 저도 리안 감독을 닮고 싶어요.”

Source: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

영화감독 김진아 "그는 어떤 사람일까?"

국내에서 개봉하는 한·미 합작 프로젝트 1호인 ‘두 번째 사랑’은 내용부터 파격적이다. 애인을 위해 돈이 필요한 한국인 남자와 남편을 위해 아이가 필요한 백인 여성의 은밀한 거래. 그리고 시작되는 예기치 못한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다. 

한국배우로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숨’ 등에서 남다른 연기력을 보여준 하정우와 ‘디파티드’로 주목을 받은 베라 파미가가 주연을 맡았다. 미국의 유명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한 작품임에도 한국적인 색깔을 유지하는 이유는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김진아 감독(34)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서양화과 92학번인 그는 대학 졸업후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칼아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현재 하버드대 시각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이력과 그간 연출한 작품의 면면을 보니 “어떤 사람일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30대 중반을 넘어서 늙어버렸다고 했지만)감독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녀리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지닌 김진아 감독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성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중성적인 이미지이거나 괄괄한(?) 성격을 떠올리게 하는데. 의상을 보면 꼭 배우 같은 느낌이 든다.
(웃음)여성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한다. 항상 부드러운 것은 아니다. 촬영장에서 한번 큰 소리를 낸 적이 있다. 한국적인 느낌을 영상에 담으려고 다기를 준비하라고 스태프에게 말했는데. 모두 미국 사람들이라 구분이 안 됐던 지 중국산을 들고 왔다. 감독이라고 해서 꼭 어떤 스타일이어야 한다는 정의는 없는 것 같다. 감독은 배우나 스태프가 최적의 상태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미술을 전공했던데. 영화 연출을 하게 된 동기는?
설치예술. 비디오. 퍼포먼스. 연극 등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감독의 길은 생각지 못했다. 대학교 4학년 때 비디오 매체를 접했고.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다. 비디오는 사적인 얘기를 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다. 내가 여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각에 예민해져있던 시기라. 비디오 촬영을 통해 자아를 표현했다. 그 대표작이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다. 내 알몸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고. 아무튼 이후의 작품들이 해외 국제 영화제에 소개됐다. 곳곳의 영화제에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감독의 길로 접어들었다. 씨앗은 작았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지금의 내가 생겨났다.

‘두 번째 사랑’은 왠지 자전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여주인공인 베라 파미가도 같은 얘기를 했다. 시나리오를 본 뒤 첫 미팅을 할 때 베라가 동양인인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영화처럼 동양계 남자와 살고 있는 외국 여성감독이라고 생각했단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의 실험적 자아다. 영화나 시나리오를 통해 판타지를 펼쳐 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난 평범한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릴적부터 스스로 소설의 주인공이 되려고 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공상을 하면서 로맨스를 꿈꿨다. 팝스타. 위인. 철학자들과의 사랑을 상상하기도 했다.

영화의 결말(남자 아이와 임신을 한 베라 파미가만이 홀로 등장한다)을 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나름대로 의미가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지하(하정우)와 잘 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 번째 사랑’은 멜로영화이면서 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파멸한 뒤 오직 사랑 하나만을 위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영화 끄트머리를 보면 아들이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신이 나온다. 그때 베라가 ‘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라는 대사를 한다. 자기 몸에 맞지 않는 곳에 있던 물고기가 드디어 자신의 몸에 맞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공동 제작을 맡은 이창동 감독과 김진아 감독의 영화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창동 감독과 나는 ‘세상에 이야기는 10가지 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연인의 사랑. 영웅인지 몰랐다가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 원수의 진한 복수 등등. 영화는 표현의 영역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 감독님과 나는 그 표현의 방식으로 불편하리만큼 사실적인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얼마전 니콜 키드먼. 톰 크루즈 등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와 샘 레이미. 마이클 만 등 스타 감독을 보유한 최고 에이전시인 CAA와 계약을 체결했던데….
어쩌면 자만하는 것처럼 보여 얘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웃음) 기본적으로 인연이 닿았던 게 중요한 것 같다. 성공한 면면만 봐서 그렇지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기획했던 작품이 잘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고. 시나리오 때문에 며칠 밤을 홀로 방에서 고민했던 적도 있다.

두번 째 사랑’이후 차기작이 궁금하다.
이미 파라마운트와 계약을 했다. 이번에는 심리 스릴러물을 할 예정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작업을 하게 됐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에서 영화를 하는 것이다. 우연히 미국의 메인스트림에서 일하게 된 덕분에 할리우드 시스템을 많이 알게 됐지만. 정작 이곳에서 한인 커뮤니티에는 속하지 못한 것 같다. 재미교포 사회도 잘 모르고…. 외국에 있다 보니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정체성 등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뭔가 사무치게 한국적인 것이 그립다.

김진아 감독 "백인女ㆍ동양男에 대한 전복"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의 드라마는 어찌 보면 전형적이다. 완벽한 남편을 두고 있는 한 여자가 아이를 갖기 위해 가진 것 없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그러나 외피를 벗어나 세 인물의 성장 배경과 캐릭터, 인종 구성을 따져보면 참으로 파격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영화를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 소개하며 미국 주류영화계의 관심까지 붙든 김진아(34) 감독은 서울대 서양화과 92학번.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칼아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3년 동안 강의를 했다. 그가 대학 4학년 때부터 쓴(?) 영상 일기를 모은 '비디오 일기'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며 주목받았고, 칼아트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단편 '빈 집'이 독일 오버하우젠 영화제 등에 출품돼 시선을 끌기도 했다.

21일 국내에 개봉될 장편 데뷔작 '두 번째 사랑'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성공한 한인 부류에 속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인 그가 미국 주류사회 일면, 이민자들의 삶의 편린, 성별과 인종과 자본의 계급 서열 등을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이야기의 원형은 몇 개 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걸 비틀 뿐이죠. 이창동 감독님의 '오아시스'도 결국은 원수 집안의 남녀가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전형적인 멜로입니다. 다만 그 원형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겠죠. 전 정공법을 택하고 싶었어요.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공격적으로 도전해 다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살펴보자. 

'디파티드'에 출연했던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소피는 겉으로 보면 완벽한 조건에서 살고 있다. 한인 이민가의 2세지만 백인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남편이 주는 조건이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아시아계 이민자가 화룡정점으로 선택한 '백인 여자'다. 그는 백인이고, 예쁘다는 외적 조건은 뒤떨어지지 않지만 극중 표현처럼 '무식한 집안'에서 자란 여자다.

한국인 두 남자의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더욱 미묘하며 미국, 아니 서양에서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암묵적으로 담겨 있다.

"미국에서, 특히 주류사회를 알 수 있는 하버드대에서 지내며 동양 남자에 대한 미국인의 시선을 알 수 있었어요. 서양인에게 동양 남자는 성적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차이나타운 등에서 일하는 동양 남자들을 보면 어느 계층 못지않은 성적인 존재인데도 서양인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마치 최근 한국에서 아시아 이주노동자를 보는 시선이랄까요. 그런데 백인 여자 소피를 성공의 트로피처럼 안은 성공한 한인 남자 앤드루는 정자 능력이 떨어져 성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죠. 이에 반해 지하는 서양인들이 바라보는 전형적인 동양 남자지만 결국 백인 여자를 성적으로 눈뜨게 합니다."

그는 설명을 하며 '전복'과 '뒤집기'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전복에 대한 김 감독의 의지는 소피의 변화에서도 포착된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의존과 모성의 대상인 어머니와 성적 대상인 창녀 아닐까요? 그런데 소피는 임신을 한 순간 오히려 성에 눈을 뜨며 창녀처럼 굽니다. 지하와의 섹스를 갈망하죠. 임신해서 오히려 성을 찾아가는 것 역시 전복이라고 봅니다."

김 감독이 이처럼 미국에서 살면서 마주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방식은 멜로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강의하며 1950년대 할리우드 멜로영화와 1960년대 한국의 멜로영화를 집중해 다시 볼 기회를 가졌고, 마침내 '멜로는 위대한 장르'라고 생각했단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제 주제의식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되더군요. '여성의 욕망은 무엇일까' '여성이 욕망을 추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데 여타 장르와 달리 멜로는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르니까요."

그래서 영화는 마침내 소피가 "이 아이는 내 아이"라고 소리치며 남자는 보이지 않은 채 아들과 뱃속의 두 번째 아이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지향한다.

"남자에 의해서가 아닌, 소피가 자기 삶을 찾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굳이 소피의 남자를 관객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의중.

그는 최근 할리우드의 유력 에이전시인 CAA와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감독, 배우, 스태프 등이 총망라돼 있는 이 회사는 영화의 총괄적인 기획을 담당한다. 주류 영화계로 발을 들여놓은 셈. 또 파라마운트사와 계약해 작업할 예정이다.

상업적 접근을 하는 데 대해 김 감독은 "영화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전세계 대중과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리안 감독을 언급했다.

"리안 감독은 자국에서 인정받은 후 미국 할리우드 시스템에 들어왔죠. 뭔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분의 작품을 보면 어느 장르에서든 '네가 내 가슴에 대해 뭘 알아?'라는 대사가 들어가요.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표현하는 말이죠. 그걸 보며 느꼈어요. 자기 마음대로 장르를 휘두르면서, 상업 코드를 이용하면서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저 역시 장르의 힘에 기대고 상업적으로 많은 관객과 주파수를 맞추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싶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너무 주제넘게 말하는 것 같네요."

기획의 힘과 작가 정신이 상업적 파워를 갖고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소망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지켜볼 만하다.

Source: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확 비틀었죠”… ‘두번째 사랑’ 의 김진아 감독

'두 번째 사랑'(제작 나우필름, Vox3)은 영어 제목 '네버 포에버'로 더 잘 알려진 영화다. 본격적인 한·미 합작 영화로 김진아 감독과 주연배우 하정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또 지난 1월 미국 선댄스 영화제의 미국영화 경쟁부문에 초청됐다는 점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개봉(21일)을 앞두고 김진아(34) 감독을 만났다. 영화가 주는 느낌과 딱 들어맞는 섬세하고도 당찬 여성이었다. 영화는 한국계 변호사와 결혼한 백인 여성 소피(베라 파미가)가 임신이 여의치 않자 한국인 불법체류자 지하(하정우)를 만나 계약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 그동안 다른 이의 삶에 얽매여있던 여자는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랑과 주체적인 삶을 얻게 된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자신의 미국 생활을 담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재미교포를 주인공으로 한 '그집앞' 등 두 편의 장편을 만든 뒤 최근까지 하버드 대학 시각예술학부 교수를 지내는 등 그의 이력이 독특하다. 
따져보면 미국에서 산 기간은 7년 정도인데 그곳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신예 배우로 마틴 스코세지의 '디파티드' 등에 출연했던 베라 파미가와의 작업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전 그렇게 유명 배우인 줄 몰랐고 '다운 투 더 본'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베라를 보고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있나 해서 시나리오를 보내봤죠. 의외로 바로 연락이 왔고 처음 만날 때부터 너무 잘 통했어요. 친자매처럼 개인적인 얘기도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소피라는 캐릭터를 함께 잡아갔죠."

그는 성공적으로 영화 현장을 조율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의외로 '여자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베라는 '네가 여성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어요. 노출이 많은 점은 여배우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는데 제가 그의 몸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했다는 거죠. 또 스태프와의 관계에서도 여성이 유리해요. 친화력이 있고, 따뜻하게 대해주면 상대는 더 헌신적으로 일하거든요."

어찌보면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인 이 영화를 찍은 계기를 물었다. "멜로는 여성의 욕망을 다루는 유일한 상업 장르죠. 그러나 대부분 영화들이 여성의 욕망은 성취되지 못한 것으로 남겨두는 점이 불만이었어요. 저는 여자가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집하면 어떻게 되나, 그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던 소피가 남편을 위해 희생을 자처하다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간 '어머니 아니면 창녀'로 구분되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작품으로 그는 더 본격적인 상업영화에 진출한다. 파라마운트사의 제의로 여자들간의 심리 스릴러인 '더 젤러스 원'(가제)의 연출을 맡아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내 의식을 구성하는 90%는 '여자'라는 자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갈지 자못 기대된다.

2007 ‘소피의 선택’…김진아의 ‘두 번째 사랑’

영화 ‘두 번째 사랑’은 여러가지로 낯설다. 백인 여자와 한국인 남자가 멜로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 흔히 ‘씨받이’라 불리는 대리모가 아니라 ‘대리부’라는 설정이 등장하는 것, 동양인도 아닌 푸른 눈에 금발을 한 여인의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것. 

낯선 풍경, 익숙한 감정 
특히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숙원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 ‘디파티드’에서 맷 데이먼과 리어나도 디카프리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베라 파미가가 한국이 공동제작한 미국 독립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묘한 건 그런 생경한 풍경들이 익숙한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건 인종과 계급과 공간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감정이라는 것인가. 
영화는 ‘소피의 선택’을 따라간다. 첫사랑이자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앤드류(데이빗 맥기니스 분)를 남편으로 둔 소피(베라 파미가 분). 결혼으로 완성시킨 완벽한 첫사랑이 언젠가부터 뿌리채 흔들린다. 아이가 없어서라고 판단한 소피는 인공수정에 매달리지만 건강하지 못한 앤드류의 정자로는 허사다. 

300달러의 유혹, 그리고 사랑은 시작되었다 
타인의 정자라도 시술해달라는 소피의 요청에 의사는 불법이라는 답을 돌려주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절박한 소피 앞에 남편과 흡사한 외모의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한국인 불법체류자 지하(하정우 분). 지하는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데려오기 위해 세탁소 정육점 허드렛일부터 짐 운반, 시계 판매 등 닥치는대로 일하며 돈벌기에 급급하다. 그날도 정자 기증으로 돈 좀 벌어보려다 소피의 눈에 띄었다. '300달러의 유혹’.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1번에 50달러를 벌 수 있는 돈벌이를 거절당한 지하에게 소피는 ‘1번에 300달러, 임신하면 3만달러’라는 제안을 한다. 여자는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남자는 애인과 함께 살기 위해 은밀한 거래를 시작하는데…. 
 
소통의 욕구, 그 탈출구 ‘사랑’ 
첫사랑을 위한 몸부림의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사랑’이 찾아온다. 그저 몸섞임이 가져온 열정일까.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에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내민다. 하나는 소통의 욕구이다. 미국 사회 주류인 백인 소피가 한국계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겪는 소통의 단절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 기도로 표현된다. 기도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녀인데, 소피의 잉태 축원 기도는 한국말로 진행된다. 아예 미국 주류사회에 낄 수 조차 없는 지하의 소통의 부재, 소외는 두말 할 나위 없다. 소통을 원하는 두 사람에게 사랑은 가장 좋은 소통 수단이다. 인간 사회의 소통에 대한 관심을 영화로 표현해온 김진아 감독의 화두가 이번 작품에서도 표면에 배치돼 있다. 
 
‘소피의 선택’…나를 사랑하라 
다른 하나는 소피의 자아발견이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먼저 배려하는 소피, 그리고 그런 그녀의 특성을 좋아하고 향유하는 남편. 자상한 듯 보이지만 일방적인 남편의 특성은 장례식에 다녀온 뒤 막무가내로 식탁 위에 소피를 눕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하는 그런 소피에게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남편이 건성 가르쳐준 기도법을 정성스레 일러준다. 돈을 매개로 한 목적성 관계지만, 지하는 소피의 상태를 배려하는 따뜻함을 보인다. 두 사람의 소통 욕구가 수면 위에 있다면, 소피의 자아발견을 수면 아래서 영화를 받치고 있다.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등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해온 김 감독의 여성주의적 시선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장소가 어디이고 소피의 현재 상황이 어떤 것인 충분히 짐작되지만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또다른 남자의 보호 아래서 누리는 행복이 아니라 ‘소피의 선택’인 것이다. 

김진아 감독의 서정적 영상 돋보여 
‘씨받이’와 대치되는 개념인 ‘씨내림’, 그것도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대리부의 이야기가 신선하지만, 어찌보면 영화의 스토리는 뻔하다. 김진아 감독 스스로도 “1950년대 멜로를 비틀어 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뻔한 얘기가 통속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사랑이 영원하다(원제: never foever)고 믿냐’ 는 자못 진지한 물음으로 다가서는 건 김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 덕이다. 
군더더기 없는 편집, 자주빛 안개가 낀듯 우수어린 영상과 피아노를 베이스로 한 서정적 음악이 눈과 귀를 감싼다. 무엇보다 영상 자체에서 감정이 묻어나는 게 압권이다. 공동제작을 맡은 이창동 감독도 “생산공장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미국 독립영화 시스템에서 제 호흡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 정도의 집중력있는 영상을 얻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극찬했다. 

베라-정우의 신뢰감 있는 ‘호흡’ 빛나 
또 하나, 베라 파미가와 하정우의 밀도있는 연기가 관객들을 소피와 지하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스크린 위의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처럼 다가서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배우는 흡인력 있는 연기로 스토리에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베라 파미가가 선댄스영화제 공식석상에서 “지금까지 공연한 배우 중 가장 멋진 건 리어나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도 아니고 쥬드 로도 아니고 하정우”라고 말했다. 하정우는 “배우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헐리우드 유명 스타답지 않게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받았는데 작품이 끝나도록 한결 같았다”고 칭찬했다. 

 

'두번째 사랑', 뻔한 '계약관계'도 감독과 배우하기 나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한국 극장가 융단폭격, 심형래 감독의 새 영화 '디 워'의 요란스런 등장, '한국 영화의 잔다르크'라던 전도연과 송혜교의 새 영화들. 칸 영화제의 첫 여우주연 수상과 여전히 구태의연한 대종상.

제작과 흥행의 침체와 달리 최근 영화계는 꽤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란 속에서 선댄스가 주목한 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바로 ‘두 번째 사랑’이다. 

'두번째 사랑'은 한국의 나우 필름과 미국의 VOX3이 함께 제작한 최초의 한미합작 영화이다. ‘두 번째 사랑’은 이창동 감독의 제작 참여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7일 열린 언론 시사회에 직접 자리해 기자간담회에도 참석할 만큼 ‘두 번째 사랑’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멜로란 그릇에 알맞게 녹인 인종과 계급 문제
‘두 번째 사랑’은 단순히 소개하면 백인 여자와 아시아계 남자의 진한 멜로 영화다. 여주인공 소피(베라 파미가 분)는 변호사인 한국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중산층의 여유를 누리고 있지만 아기가 없어 이들의 결혼 생활을 힘들게 한다. 소피는 어떻게든 아기를 가져 사랑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인공수정 등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다. 

남편의 자살 기도 후 불임센터를 찾았던 어느 날, 소피는 자기 정자를 팔려다 불법 체류자 신분 때문에 거절당하는 한국인 청년 지하(하정우 분)를 보고 무작정 그의 뒤를 쫓는다. 지하는 세탁소, 정육점, 레스토랑 등 가리지 않고 일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국인 불법 체류자. 그는 한국에 있는 애인을 데려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돈을 모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소피는 예상 밖의 제안을 한다. 한 번의 섹스에 300달러, 임신을 하면 3만 달러를 주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소피의 간절함과 거액의 제안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지하의 마음을 바꿔놓고 그들의 거래는 시작된다. 
거래로 시작한 관계에서 소피와 지하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서로의 아픔을 나눈다. 함께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할 때, 소피는 지하에게 임신 소식을 전하며 거래의 끝을 알린다. 

짧은 거래가 끝난 후 소피와 지하는 서로 그리워하다 다시 만남을 갖지만 소피의 남편 앤드류(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에게 발각되면서 이별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30대 중반의 여성인 김진아 감독은 이렇게 ‘두 번째 사랑’에서 멜로라는 가장 흔한 영화의 그릇 속에 인종과 계급이라는 예민한, 자칫 잘못 다루면 오히려 생뚱한 흐름으로 튈 수 있는 재료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당히 녹여냈다. 

이야기의 전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도, 불필요하게 설명하는 것도 없이 깔끔하다.

베라 파미가는 절망에서 희망을 찾고 또 사랑에 빠지는 여인으로 분해 할리우드가 인정한 차세대 스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고, 하정우는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스타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매력을 표출하며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나리오만 보고 흔쾌히 작업에 동참한 영화 '피아노'의 음악 감독 마이클 나이만의 음악은 두 말 할 나위 없을 정도. 적절하게 영화의 감성을 표현한다.

애절하고 격정적인 멜로 영화 ‘두 번째 사랑’은 21일 개봉한다. 

글로벌 프로젝트 ‘네버 포에버’, 선댄스에서 관심과 찬사 쏟아져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미국영화 경쟁부문에 진출한 ‘네버 포에버’(김진아 감독, 나우필름/Vox3 필름 제작)가 비록 수상의 영광을 안지 못했지만 깊은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네버 포에버’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국인 지하(하정우 분)와 파란눈의 여자 소피(베라 파미가 분)의 비밀스럽고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 1월 21일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시작으로 22일 프레스 스크리닝과 26일까지 이어진 일반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네버 포에버’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에 몰입했고, 대부분의 여성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극 중 소피와 지하의 애틋한 사랑에 감동 받았다”, “최근 본 멜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사랑이야기다”, “매혹적인 멜로드라마다”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미국의 유력지 버라이어티도 ‘네버 포에버’를 “정서적으로 강력한 멜로 드라마다”며 “김진아 감독이 놀라운 내러티브적 이해력을 작품을 탄생시켰다. 자연조명은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을 능숙하게 주시하고 리드미컬한 카메라 워킹은 멜로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호평했다. 

특히 뉴욕에 찾아 든 지하 역을 맡은 하정우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신선한 얼굴이다. 스크린 속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신비한 느낌의 남자이고 존재감이 강한 배우다”, “섬세하고 조용한 얼굴로 수많은 말을 전하는 배우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심과 주목을 받은 ‘네버 포에버’는 올 봄에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네버포에버', 선댄스영화제 관심집중

영화 ‘네버포에버’가 18일 개막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받고 있다. 한국영화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해 있다. ‘저수지의 개들’, ‘메멘토’, ‘헤드윅’ 등 수많은 화제작이 거쳐 간 섹션이다.

‘네버포에버’에 대해 영화제 측은 “김진아 감독은 풍부한 이야기로 겹겹이 쌓여가는 극적 위기를 만들어냈고, 정확히 계산된 눈으로 간결하며 한 치 어긋남 없는 샷을 구성해냈다”고 소개하고 있다.

배라 파미가와 함께 하정우, 데이비스 맥기니스 등 배우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특히 파미가는 2004년 ‘다운 투 더 본’으로 특별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선댄스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에 출연하며 세계 유수 영화제에 이미 얼굴을 알린 하정우에게도 취재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네버포에버’는 한국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비밀스럽고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 국내에서는 올 봄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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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포에버> 선댄스 영화제 미국 영화 경쟁부문 진출

하정우 주연의 한미합작프로젝트 <네버 포에버>가 미국 유타주에서 2007년 1월 18일부터 열리는 선댄스영화제에서 미국 영화 경쟁(American Competition) 부문에 진출했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배트맨 비긴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감독들을 배출해 낸 선댄스 영화제는 세계 영화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새로운 작품,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는 가장 중요한 영화 축제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영화 경쟁(American Competition) 부문은 <메멘토>, <저수지의 개들>, <헤드윅>, <허슬 앤 플로우>, <슈퍼 사이즈 미>,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등 수많은 화제작들을 발굴해낸 부문으로 매년 미국에서 제작되는 수백편의 출품작 중 단 16편만이 선정된다. 2007년 선댄스영화제 미국 영화 경쟁(American Competition) 부문에는 996편의 출품작이 경쟁을 벌였다. 

<네버 포에버>는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국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격정적 사랑을 그린 작품. <그 집 앞>으로 주목받은 김진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인어공주>를 만든 나우필름과 미국의 박스3(VOX3)에서 공동제작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 <시간> <구미호 가족> 등으로 주목받아온 하정우가 성공한 한국인 2세 변호사를 남편으로 둔 백인 여인 소피와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며 격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한국인 남자 역으로 분했다.

한편, 소피 역은 최근 개봉한 <디파티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베라 파마가가 맡았다. 나우필름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할리우드의 거장 감독들이 가장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여배우 1순위로 알려진 베라 파마가가 <네버 포에버>의 시나리오를 건네받고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할 정도로 이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격정 멜로 <네버 포에버>로 감각적인 영상과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 김진아 감독은 이번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세계 영화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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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포에버> 김진아 감독

<네버 포에버>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
7월 촬영을 시작해서 8월29일 끝마쳤고, 지금은 뉴욕영화의 후반작업을 거의 다 하는 포스트웍스라는 곳에서 편집 중이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원래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여자의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그것을 언제나 화두로 생각하고 있자니까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항상 깨고 싶어하는 것이 성모 마리아 신화인데, 여자는 어머니와 창녀가 있다는 것 말이다. 둘 다 남자에게 뭔가(밥과 몸)를 준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굉장히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여겨지잖나. 그런데 그게 사실은 같다는 것을 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른 한축으로는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게 인간의 비극인데, 그게 가장 쓰라린 감정으로 느껴지는 게 멜로인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매우 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
하버드대학 초청교수를 맡고 백인 도시인 보스턴에 살면서, 인종적인 자각 같은 게 생겼다. 특히 하버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백인 중심적이다. 우리 학과에 27명의 교수가 있는데 유색인종은 나뿐이다. 또 하버드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수업을 했을 때 <자유부인>이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한국 고전영화를 다시 보면서 멜로가 정말 위대한 장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보수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여성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들이라 전복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런 전복적인 요소의 결론이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굉장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모든 것이 섞이면서 어느 날 갑자기 탁 터진 게 <네버 포에버>의 줄거리였다. 거짓말이 아니라 하루 만에 구상이 끝났고, 3일 만에 신 넘버가 있는 트리트먼트를 썼다.

정말 장르적 의미에서 멜로영화인가.
진짜 멜로영화다. 인종, 미국, 불임, 뉴욕처럼 곁가지 요소가 있지만 영화 자체를 보면 정통멜로다.

갑자기 장르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 집 앞>은 유학 끝낸 지도 얼마 안 됐고 한국에 그런 영화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게 만들어진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나서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 집 앞>은 정말 작가의 독백 같은 영화였고, 이렇게 스스로를 반추하는 영화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멜로라는 장르에 더 끌린 것 같다. 가장 통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베라 파미가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우리 캐스팅 디렉터가 굉장히 유능하다. (웃음) 내가 시나리오를 보냈을 때, 파미가는 휴가차 외국에 있었다. <인 트랜지트>라는 영화 촬영을 위해 러시아로 가기 전 뉴욕에 하루 들른 날 나를 만나러 왔다. 시나리오를 배에서 읽고 내리자마자 나를 만나러 온 거다. 시나리오를 굉장히 좋게 봤던 것 같고, 올해 상반기에만 4편을 찍는 등 바쁜 와중에도 출연을 결정했다.

베라 파미가와 하정우의 호흡이 잘 맞았다고 들었다.
촬영하기 전 하정우와 파미가가 하루 정도는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자리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리허설이 아니라 서로를 익힌다는 정도로 감정없이 평이하게 대사를 읽으면서 시나리오 리딩을 하는데, 한신이 끝나자 파미가가 시나리오를 덮더니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데 파미가는 매우 흥분해서 ‘저렇게 에너지가 센 배우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하정우에 대해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쪽 공동제작사인 복스3(VOX3)와는 어떻게 접촉했나.
줄리아나 브루노라고 하버드 동료 교수가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복스3의 대표인 앤드루 피어버그다. 파티할 때 자연스럽게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는 함께 작업하자고 하더라.

한국 영화사가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천차만별인 것 같다. 다른 영화는 몰라도 내 영화는 100% 미국 스탭과 100% 미국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어떨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이게 한인들의 삶을 다룬 게 아니니까 이곳 스탭들은 미국영화에 더 가깝게 생각하는 눈치다. 하여간 그런 프로젝트들이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특급 작곡가인 마이클 니먼이 음악을 맡는다고 들었다.
2001년 한국에서 열린 마이클 니먼의 콘서트에 갔는데, 니먼의 초청을 받은 김기덕 감독이 와 있었다. 그런데 김 감독님이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니먼과 친해졌다. 프리 프로덕션 도중 음악감독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마이클 니먼을 안다고 하니까 모두들 코웃음을 치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하더라. 열 받아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하겠다고 했다. 돈문제를 물어봤더니 자기는 ‘시나리오가 좋으면 돈은 안 보고 일한다’고 하더라. 정말 다행이다.

Source: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19...

한국남자 미국여자 격정 연애담

<네버 포에버> 뉴욕 제작기 

실질적인 한미 합작 1호 프로젝트인 김진아 감독의 <네버 포에버>가 최근 크랭크업했다. 베라 파미가를 캐스팅, 뉴욕에서 로케이션을 끝내기까지 <네버 포에버> 프로덕션의 전모를 들여다본다.

한국영화가 거대한 미국시장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영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지만 여전히 북미시장에서는 그 인지도가 미미하다. 장이모우 감독의 <영웅>이 미국에서는 3,000개나 넘는 스크린을 확보,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미국개봉 당시 29개의 스크린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 혹은 스크린당 좌석점유율을 떠나 북미시장에서 한국영화는 영원한 마이너리티다. 

최근 이처럼 견고한 미국시장을 겨냥한 한미 합작영화 제작이 잇따르고 있다. 엘제이필름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작한 미국의 포커스필름과 합작계약을 맺고 <프린세스 줄리아>를 제작 중이며, 아이에치큐는 LA에 지사까지 세웠다. 한편, CJ엔터테인먼트는 한국계 마이클 강 감독이 연출하는 <웨스트 32번가>를 통해 미국 내 직접 배급에 나설 예정이다. 

이 같은 사례들은 과거처럼 단순히 미국 현지 인력들을 고용하는 로케이션 수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에 앞서 가장 먼저 한미 합작 테이프를 끊은 것은 지난 9월 초 크랭크업한 하정우, 데이비드 맥기니스, 베라 파미가 주연, 김진아 감독의 <네버 포에버>다. <김진아의 비디오 다이어리>(2001)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초청작 <그 집 앞>(2003)을 만든 김진아 감독은 현재 하버드대에서 영화제작전공 교수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창립작으로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2004)를 제작했던 나우필름은 이렇게 박스3(VOX3)와 합작계약을 맺고 두 번째 영화로 제법 만만찮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박스3는 200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세크리터리>를 제작한 회사로 올해 1회가 열리는 로마영화제의 개막작인 니콜 키드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퍼>를 제작하며 한창 주목받고 있는 중급 규모의 영화사다. 물론 <네버 포에버>가 <영웅>이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대작은 아니며 김진아 감독 역시 국내에 특별한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네버 포에버>는 중급 장르 영화의 북미시장 공략과 효율적인 배급, 미국 제작 시스템 내에서의 본격적인 프로덕션 가동이라는 점에서 단연 눈여겨 볼 만한 사례다. 

<네버 포에버>는 강렬한 러브스토리 

김진아 감독은 이전부터 나우필름과 차기작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를 주목하고 있던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기존 충무로 영화와는 색다른 감성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렇게 작년에 <네버 포에버>와는 다른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던 중 이야기는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 했고 김진아 감독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가서 좀 더 고민하겠다고 말한 김진아 감독이 얼마 뒤 <네버 포에버>의 첫 번째 트리트먼트를 보내왔다. 본인 스스로가 오랜 미국생활을 해왔던 터, 그가 느껴왔던 미국생활의 디테일한 정서들이 한국적 맥락과도 깊게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 작들과는 사뭇 다른 전형적이고도 격정적인 멜로영화였다. 첫 번째 트리트먼트에 이준동 대표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김진아 감독 역시 ‘100% 멜로드라마’라고 얘기하고 이준동 대표 역시 ‘멜로영화의 드라마투르기에 충실한 섬세하면서도 통속적인 연애담’이라고 말한다. 김진아 감독의 이전 작들인 <김진아의 비디오 다이어리>나 <그 집 앞>과 비교하자면 좀 더 장르성에 충실한 정통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앤드류(데이비드 맥기니스)가 백인 아내 소피(베라 파미가)와 결혼한다. 뉴욕에 살지만 아들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한국인 커뮤니티를 고수하고 있는 그 가족 안에서 소피는 불편함을 느낀다. 가족의 바람대로 아들을 낳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 남편의 폭력까지 더해진다. 급기야 소피는 아들을 낳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한국남자 지하(하정우)와 정자 제공을 조건으로 섹스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계약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가 격정적인 연애의 감정으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네버 포에버>는 지극히 통속적인 감정들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가장 강렬한 정서를 전달한다. 김진아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실험적인 스타일과 작가적 면모가 <네버 포에버>를 향한 어떤 선입견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준동 대표는 “<네버 포에버>가 너무나 흡입력 있고, 보편적인 멜로드라마라는 것에 끌렸다. 지극히 통속적인 것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진아 감독도 <네버 포에버>가 자신의 첫 번째 본격적인 상업 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나의 첫 상업 영화’라는 것 외에는 이번 작업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소위 말하는 상업 영화의 본분에 충실한, 보다 대중적인 호흡으로 폭넓은 만남의 장에 서고 싶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진심으로 애정이 가지 않는 대상이나 이야기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원칙만큼은 명쾌하다고 말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관음을 본질적 미학으로 하는 것이다보니 그 관음을 정당화할 변명거리가 필요하다. 내게 있어서 그 변명은 대상에 대한 '격렬한 애정'이다. 여기서 나만의 테마라면 ‘원하면 안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내 영화의 변하지 않는 테마”라는 게 그의 얘기다. 

VOX3와의 합작, 그리고 베라 파미가 

<네버 포에버>의 무대는 뉴욕, 이전 한국영화들처럼 현지 배우를 섭외해 로케이션만 미국에서 하고 한국인 스탭들로만 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제작자로서는 편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준동 대표는 좀 더 생각을 확장시켜 한미 합작을 구상했다. 발상을 전환하고 보니 오히려 그것이 장기적으로 더 쉽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준동 대표는 “부담은 줄이고 기회는 높이고, 제작자 입장에서는 기존 방식으로 가면 편한데, 내부적으로 고민해보니 오히려 합작 형식이 더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먼저 우리가 직접 현지 진행을 하게 되면 크리에이티브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다른 데 신경 쓰느라 낭비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직접 하면 베라 파미가 같은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힘들다”며 “박스3와 접촉하면서 우리가 시나리오 등 크리에이티브를 책임지면, 그쪽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덕션상의 인력 고용이나 현지 로케이션 진행을 맡기로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의 시나리오였다. “박스3에서 시나리오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그쪽에서 작품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합작은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제작자 앤드류 피어버그가 이끌고 있는 박스3는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세크리터리> 이후 한창 주목받고 있는 제작사다. 박스3에서 제작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는 <세크리터리>의 스티븐 샤인버그 감독은 이후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하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빌 포프 촬영감독까지 끌어들여 <퍼>를 완성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세크리터리>의 스티븐 피어버그 촬영감독이 앤드류 피어버그의 동생으로, 동생이 먼저 영화계에 투신한 이후 영화계로 건너온 앤드류는 박스3 이전 활동까지 포함 20편 이상을 제작한 베테랑 제작자다. 합작계획이 무르익어가던 중 이준동 대표는 앤드류를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했고 두 사람이 막역한 ‘소주’ 친구가 되면서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앤드류는 <네버 포에버> 촬영차 뉴욕을 찾은 이준동 대표를 ‘괜찮은 한국식당 발견했다’며 안내, 자신이 먼저 소주를 권할 정도로 지한파가 됐다. 베라 파미가를 캐스팅하고, 실력 좋은 인력들이 <네버 포에버>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박스3와의 합작 덕분이었다. 

이후 본격적인 캐스팅 작업이 시작되면서 나우필름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3명 정도의 배우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밀려 있는 작품들이 있어 수월하게 캐스팅할 수 있는 배우들이 아니었다. 그즈음 현지 캐스팅 디렉터가 추천한 배우가 바로 베라 파미가였다. 하지만 그 역시 2006년 개봉 영화가 5편이나 되는 소위 막 뜨기 시작한 배우라 그마저도 확정적인 건 아니었다. 국내 미개봉작인 <다운 투 더 본>으로 선댄스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는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인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에 주연(원작의 진혜림 역할)으로 캐스팅되면서 주가가 급상승 중이며, 국내에는 <러닝 스케어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최근 9월 3일자 ‘뉴욕타임스’ 지는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에 대한 김진아 감독의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다. “베라는 처음 <다운 투 더 본>을 보고 알게 됐다. 이외에도 애드리언 브로디와 주연한 <더미> 등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은 몇 개의 영화가 더 있는데 정말 무서운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고 나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그녀에게 반해 <디파티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의 상대역인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는데 너무 만족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신작 <브레이킹 앤 엔터링>에 베라를 캐스팅한 안소니 밍겔라 감독도 좋은 배우라고 여기저기 공식적으로 소문을 내고 다니고, 하여간 캐스팅 디렉터는 현재 너무 주목받고 있어 캐스팅하기 힘들 거라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며칠 후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며 40도가 넘는 고열에도 불구하고 나를 만나러 나와 줬다. 정말 고마웠고, 첫 인상에서 완벽한 소피라는 느낌이 왔다.” 
더욱이 쫑파티 날, 한국 스탭들의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노래방에 가게 된 베라 파미가는 최후의 네 사람이 남을 때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을 정도로 제작자 앤드류 피어버그만큼이나 지한파가 됐다. 촬영 내내 모든 대사를 영어로 소화한 하정우의 적극성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미 합작, 모범사례 써나간다

이준동 대표는 <네버 포에버>가 한미 합작의 실질적인 첫 번째이자, 그 시스템에 가장 충실한 영화 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국영화가 미국에 진입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국내 시장을 벗어나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려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대작 영화가 아니면서 적정한 예산의 영화로 미국의 영화산업과 제작 시스템을 제대로 체험하고, 이후 노하우까지전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만큼 <네버 포에버>는 단순한 현지 인력 고용 차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제작 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익혔다. 그 시작에는 다소 두려움이 앞섰지만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제작 초기 배우노조, 운송노조 등으로부터 영화제작 허가서를 받아야 워킹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일을 추진하다 뒤늦게 알고 홍역을 치렀던 걸 제외하고는 이후 작업은 순조로웠다. “촬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다. 계획대로 진행이 됐고 다만 언어 문제도 있고 스탭 성향에 대해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한국 쪽 촬영, 조명팀의 성향이 다소 다르듯 여기서도 그런 미세한 공통점들을 발견하고 보니 ‘영화하는 사람들 어디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가령 아시아 사람들과 달리 현지 미국인 캐스팅 디렉터가 아시아인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한국인 가족 엑스트라들을 구성해야 하는데 각기 다른 중국, 일본, 필리핀 사람들을 구해와서 난감한 경우 정도는 귀여운 에피소드에 속한다. 
 
워낙 계약이 철저하기 때문에 미국의 영화제작 시스템이 한국과 달리 융통성이 없을 거란 오해도 많이 풀렸다. 오히려 다양한 계약조건을 가지고 있는 탄력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월-금 매일 8시간, 월-금 매일 12시간, 월-토 매일 8시간 등 근무조건이 다양하다. <네버 포에버>는 월-금 매일 12시간으로 계약했는데 그게 단순히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가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콜 타임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러니까 아침 8시가 콜 타임이면 저녁 8시인 거다. 이준동 대표는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하여간 문서가 많더라. 참여한 스탭들이 일지를 쓰고 그것에 근거해 돈을 그 사람한테 주는 게 아니라 노조에게 지급하면, 노조 회계를 대행하는 회사가 그 서류를 받아 집행하는 식이다.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모여서 하나의 통일적인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영화현장의 특수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유은정 PD 역시 “단순히 현지 로케이션으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악명 높다는 미국 영화산업노조와 스크린액터스길드 시스템 내에서 무리 없이 제작한 첫 번째 한국영화”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네버 포에버>는 대부분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는데, 촬영허가를 받는 순간 경찰이 동행해 현장통제 등 제반업무를 지원해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보다 수월한 진행이 가능할 수 있었다. 

<네버 포에버>는 가장 인상적인 뉴욕 풍경이 펼쳐지는 한국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고비는 오히려 시스템과 별개로 촬영 시작 전에 있었다. <네버 포에버>는 격정적인 사랑과 욕망을 다루고 있는 만큼 제법 많은 노출 신들이 포함돼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촬영 이전 합의해야 하는 노출조항이 꽤 까다롭다. 하지만 크랭크인에 앞서 베라 파미가는 정면 노출 불가, 카메라가 엉덩이 밑까지 내려오는 것 불가 정도를 제외하고는 15페이지에 달하는 노출조항을 다 무시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스스로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상업적으로 팔아먹는 영화가 아닌가 하고 갑자기 의심을 갖게 된 것이다.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색다른 형태와 시스템의 영화이기에 제작 도중 그가 느꼈을 애매함과 불안감을 짐작할 만도 하다. 그 즈음 영화는 꽤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지만 베라가 김진아 감독의 전작들을 보게 되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러한 오해는 말끔히 사라졌다. ‘한미 합작’ 영화라는 화두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영화 소프트웨어 그 자체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라 할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 한미 합작 사례라는 작지만 큰 발자국을 뗀 <네버 포에버>는 내년 초 관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열정적 사랑 이야기” 김진아 감독 인터뷰

<김진아의 비디오 다이어리>(2001)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초청작 <그 집 앞>(2003)을 만든 김진아 감독, 그는 현재 한미 합작영화 <네버 포에버>를 연출 중이다. 김진아 감독을 만나 <네버 포에버>에 대해 들어보았다. 

<네버 포에버>는 남녀문제, 가족문제가 미국사회 내에서의 인종문제와도 겹치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모든 남녀관계, 또 모든 개인적인 관계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도 남녀관계들 중 계급문제와 무관한 커플이 과연 몇 쌍이나 있을까? 다시 말해 이 영화를 특별히 인종문제나 이민자문제를 다루기 위해 '기획'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잘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 게으른 성향과 내가 원했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에 또 다른 레이어를 주게 된 것 같다. 

당신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가장 장르성이 강한 것 같다. 
100퍼센트 멜로드라마다. 워낙에 꼭 영화뿐 아니라 근대극으로서 멜로드라마에도 관심이 많다. 영화 쪽으로는 더글라스 서크 같은 50년대 할리우드 멜로영화들의 팬이기도 하지만, 가장 자극을 많이 받은 것은 오히려 60년대 한국의 멜로영화들이었다.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됐는데, 당시 극장 가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었던 '아줌마'들을 위한 이 멜로물들이 얼마나 큰 전복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새삼 놀랐다. 그 가능성을 부활시켜 가장 멜로적인 형식으로, 가장 현대적인 주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베라 파미가가 연기하는 소피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가? 
소피는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원래 소피는 영화가 시작될 즈음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요구를 들어주고 실현해주는 것이 자신의 목표인, 그러나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여자다. 그러나 가난한 한국 이민자인 지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욕망(삶 자체에 대한)을 재발견하게 된다. 베라와의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 작가이자 감독인 나보다 더 잘 소피를 이해한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피의 작은 제스처들, 앞머리의 컬, 걷는 모습 하나까지도 같이 고민해 만들어낸 것들이다. 나는 배우를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캐릭터를 실현해줄 인형으로 보지 않는다. 반대로 배우에게 영감을 받고 배우가 가진 필모의 페르소나는 물론 자연인으로서의 매력까지도 적극적으로 영화에 사용한다. 베라는 이런 나의 성향을 무척 반가워했다. 또 베라를 만나고 난 후 베르메르와 모딜리아니, 드가,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 등 화가들의 그림에서 영감 받은 소피의 이미지 메이킹 자료들을 보냈는데 그걸 소중히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해냈다. 

상대역인 하정우와 데이비드 맥기니스에 얘기해준다면?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영향이 컸다. 그를 탐내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하정우에게는 연예인이 아닌 '배우'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최무룡 선생님이나 김진규 선생님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옛날 배우의 냄새 말이다.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주말을 끼고 하루 만에 답변이 왔다. 그 박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하냐고 묻는 말에 '외모가 제일 중요해요'라고 말하곤 해서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들고는 한다.(웃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외모는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자연인으로서의 매력,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와 아우라, 또 영화의 배역에 맞게 자신을 만들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유연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백지 같은 여백까지 있어야 한다. 데이비드는 연기 경력이 길지 않아 배우로서는 크게 입증된 바 없지만, 오로지 이미지와 가능성을 보고 결정했다. 내면연기가 필요한 힘든 역을 잘 소화해줘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인, 미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번과 같은 합작영화를 만드는 감독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평소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처음 베라를 만났을 때 베라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한국남자와 결혼한 미국여자일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마 내 이름의 영문 철자 ‘Jina'가 영어로도 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같았으면 그런 말에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소위 정체성 논의가 정점에 달하기도 했었고, 미국에 처음 유학 와서 아시아 여자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자각했을 때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나는 나라는 생각을 한다. 일단 '나와 같은 무리'를 찾아 섞이기에는 너무나 많이 고립돼 있다. 하버드 시각예술 학부 교수 27명 중 유색인종은 나 하나다. 한국학생이 그렇게도 많은 하버드지만 예술 학부 전체에 한국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미국영화계에서도 아시아 여성 감독은 거의 찾기 힘들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여자라는 것, '결여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행복해져버린 까닭이다. 옛날에는 늘 생각했었다. “나는 이렇게 작은데 왜 내 한 몸을 편하게 뉘일 자리가 세상에는 없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늘 안정에 대한 그리움이 솟고 정착하고 싶을 때마다 존경하는 한 선배 언니가 하는 말처럼 ’어차피 위대함은 그들의 것이니까‘ 라고 속삭이고 훌훌 털고 일어난다. 이제는 정말 삶의 유목민이 된 것처럼. 지금은 그래서 편하다. 마초들이 판치고 백인들만이 우글대는 촬영장에서도 나는 촬영조끼보다 내 몸에 더 편하게 맞는 앞치마를 입고 일했다. 

하버드에서 진행한 한국영화 강좌나 한국영화인들의 특강의 반응은 어땠나? 
이상하게 그 한국영화 강좌가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는데, 사실 나는 한국영화를 가르치기 위해 하버드에 초청된 것이 아니고, 시각예술 학부에서 영화를 가르치기 위해 간 거다. 아직 한국인 학생이 없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버드에도 영화과가 있다. 그러던 중 한국감독이라는 이유로 한국영화 강좌까지 잠시 맡게 된 것이다. 그 강좌는 두 학기만 하고 영화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그만뒀고 지금은 영화제작 강의만 하고 있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국영화를 가르쳤던 작년 가을을 되새겨 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학풍의 하버드 같은 경우 조심스러운 편이다. 임권택 감독, 김홍준 감독, 김동원 감독, 이재용 감독 등을 초청해 영화제를 열기도 했는데 거의 모든 상영이 매진이었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니 지금 한다면 또 다를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공공연한 한국영화광이고 베라는 그의 <디파티드>에 출연까지 했다. 
베라 같은 경우 한국영화를 소문으로만 듣다가 한국영화광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덕에 시달리고 있는데,(웃음) 과장 하나도 안 하고 스콜세지는 거의 매일 베라에게 한국영화 DVD를 택배로 보내준다. 내가 같이 놀고 있을 때 받은 것만 해도 <질투는 나의 힘>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적어도 대여섯 개는 된다. 심지어는 베라가 스콜세지에게 하정우 자랑을 했더니, 스콜세지가 도대체 어디 나온 배우냐고 묻기에 <용서받지 못한 자>에 나왔다고 하자, 마침 그 영화를 보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비단 스콜세지뿐 아니라 한국영화가 여기 영화지식인들에게는 가장 핫 아이템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집앞' 김진아 감독, 하버드大서 영화제작 지원받아

김진아 감독의 차기작 '네버 포에버'에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필름 스터디 센터가 현금 1만불과 기자재, 연구실 등을 지원하기로 해 화제다.

김진아 감독은 영화 '그 집 앞'으로 국내외 평단의 주목을 받은 신인감독으로 올 봄부터 한국영화를 정식과목으로 개설한 하버드대 영화과에서 다큐멘터리/극영화 연출과 한국영화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의 차기작 '네버 포에버'는 한국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사랑을 다룬 35m 장편 영화로 현재 한미 양국에서 캐스팅 및 투자 작업이 진행 중이다.

김진아(Gina Kim) 감독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6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1999년 미국 칼아트 영화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외대 신문방송학과,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강사를 거쳐 현재 미국 하버드대 영화제작전공 초빙 감독 및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로 국내외에서 독특하고 섬세한 영상을 인정받은 후, 극영화 데뷔작인 '그 집 앞'으로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등에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박홍규 기자 park@mydaily.co.kr

Source: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

김진아 감독 하버드대학 영화과에 초빙

'그 집 앞', '비디오 일기'를 연출했던 김진아 감독이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영화사 픽쳐북무비스는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해 로카르노, 토리노, 예테보리, 로테르담등의 해외 유명영화제에 초청 받았던 김진아 감독이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화과에 교수겸 초빙감독으로 부임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하버드대학 영화과는 할 하틀리, 라울 루이즈등 유명 예술 감독들을 초청해왔으나 아시아 감독을 초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진아 감독은 1년간 하버드대학에서 한국영화 감상등의 수업으로 강의하는 한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제작등 작품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Source: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