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얘기 5개, 영화로 만드는 게 꿈”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된 30대 여성 감독 김진아

한국의 30대 여성 감독이 명문 하버드대 교수로 정식 임용됐다. 영화 ‘두번째 사랑’ ‘파이널 레시피’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김진아(39) 감독. 그는 9월 학기부터 1년간 하버드대 시각예술환경학부에서 영화 제작 관련 과목을 강의할 예정이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칼 아츠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그 집 앞’ 등의 작품이 베를린 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서 잇따라 호평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에 주목한 하버드대는 2004년 아시아 감독 최초로 김 감독을 교수로 초빙했다. 2007년까지 3년간 교수로 지냈던 그는 이번에 두 번째 초청을 받았다.

“영화 제작 이론과 실습을 두루 가르칠 예정이에요. 마스터 클래스에서 고급 영화 제작 과정도 맡을 것 같고요. 봄 학기엔 촬영부터 음악·의상 등 극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세미나도 열 생각입니다.”
하버드대 시각예술환경학부는 현장에서 활약하는 영화감독을 매년 한 명씩 교수로 영입하고 있다. 현직 감독을 통해 상아탑에선 배울 수 없는 생생한 영화 제작 현장을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교육을 위해 종신계약은 배제하고 1년씩 전임교원으로 임용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스파이크 리 등 유명 감독들이 초청 대상이었다.

이런 자리에 2004년 당시 30세의 신인급 여성 감독이 임용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인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실험극 성격의 ‘그 집 앞’이 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되면서 두 작품에 대한 책도 여럿 나왔고 논문들에서도 종종 인용이 됐어요. 당시 토리노 영화제에서도 두 영화로 특별전을 열었는데, 하버드대 교수가 우연히 보고는 곧바로 초청을 해왔어요.”

대부분의 감독들이 1년 계약을 마치고 현업으로 돌아간 데 비해 김 감독은 이례적으로 3년 연속 교수로 활동했다. “그때만 해도 하버드대가 지금 같지 않았어요. 너무나 닫혀 있는 사회였다고 할까. 한국도 당시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죠. ‘올드 보이’가 전 세계를 휩쓴 게 언젠데 한국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안 되겠다 싶어 한국영화제를 준비했어요. 아이비리그에서도 첫 시도였다고 해요.”

1960년대 영화부터 한국영화 대표작 15편을 상영했는데 예상 외로 좋은 반응 속에 상영 요청이 쇄도했다. 보스턴 미술관에서도 회고전을 열겠다고 나섰고 뉴욕에서도 연락이 왔다. “힘은 들었지만 뿌듯했고 보람찼습니다. 학장도 ‘훌륭한 문화교류의 자리를 마련해줘 고맙다’며 감사편지를 보내왔고, 이후 계속 교수직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김 감독이 이론과 실기를 두루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교수들은 2~3년 전부터 대학에 다시 와달라는 부탁을 해왔고, 영화 작업 때문에 계속 고사하던 그는 결국 올해 잠시 현업을 떠나 다시 하버드대에서 학생들과 마주하기로 했다.

미대 다니다 비디오에 매료돼 영화 선택
김 감독은 미술을 전공한 뒤 영화감독의 길을 택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감독을 꿈꿨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은 한 번도 꾼 적이 없었고, 지금도 꾸지 않아요. 살면서 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뭘 ‘하고’ 싶다,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죠.”

그가 대학 4학년 때 영상매체라는 수업이 처음 생겼다. “비디오 아트를 배웠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60년대 비디오 매체가 처음 나왔을 때 미국 여성주의 작가들이 왜 그리 열광했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한국에서는 아직 처녀림이었고요. 지금은 너무 보편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혁명적이라고 생각했고, 이걸 해야겠다 싶었죠.”

영화 전문대학원으로 정평이 나 있는 칼 아츠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방법이 마땅찮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일단 부딪치고 보기’. 그는 미국 LA 인근에 있는 대학교로 무작정 찾아가 교수를 만난 뒤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며 “나는 당신과 공부하고 싶다”고 당당히 밝혔다. 결국 그는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다행히 제 영화 속에서 뭔가 날것의 의지가 보였던 것 같고, 그 열의 때문에 가르쳐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비디오 아트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줬다. “소위 남성 작가들에 의해 이미 남성화되지 않은, 아직 언어가 정립되지 않은 세계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또 비디오가 각광받게 된 이유가 ‘인스턴트 피드백’이잖아요. 심지어 보면서 찍을 수도 있고. 그런 나르시즘적 미학이라는 게 이전의 다른 매체와는 전혀 달랐죠.”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자그마한 그림을 그리더라도, 골방에서 혼자 시를 쓰더라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잠재 관객 때문 아니겠어요. 만난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시간을 초월하는 수많은 관객에 대한 남모를 기대감이랄까. 그들과 닿고 싶은 소통에 대한 열망이 큰데, 여기에 비디오라는 강력한 매체가 등장한 거죠.”

그는 어릴 때부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갔다. 미술에 소질을 보여 미대를 택했지만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그림의 한계, 대중과의 소통 등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비디오 아트를 접한 뒤 ‘이렇게 민주적인 매체가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그의 초기 작품들은 메시지를 중시하는 예술영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최근 영화들은 훨씬 대중적이다. 예술성이냐, 대중성이냐. 그의 지향점이 궁금했다. 그는 조금은 다른 답변을 내놨다. “그런 구획 자체가 억압인 것 같아요. 전 뼛속까지 자유주의자입니다(웃음). 특히 한국에서 그런 억압이 심한 듯싶어요. 과일가게에 가도 색깔로, 향기로 구분할 수 있고 여름 과일과 가을 과일, 껍질을 까먹는 것과 까지 않고 먹는 것, 이렇게 종류가 다양한데 한국은 기준이 단 하나, 가격대죠. 모든 걸 무시하고 획일화하는 억압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싶진 않아요. 누구나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 거잖아요.”

그가 생각하는 영화란 무엇일까. 그는 대학원에 다닐 때 어느 교수가 “이것 한 가지만 명심하라”며 전한 문장을 소개했다. 바로 ‘영화란 시간을 공간으로 번역하는 매체’라는 것(Cinema translates time into space). “시간이 갖고 있는 기억을 어떻게 공간화하느냐,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로 재생하느냐. 그게 영화 아니겠어요.”

그는 그러면서 필름과 비디오를 비교해 설명했다. “영화는 24장의 그림이 빛에 의해 영사가 되는 거고, 그걸 이어지는 그림으로 보는 건 뇌의 착각에 의한 거죠. 시각의 잔상 효과로 인해. 그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그 희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이젠 디지털화되면서 불연속적인 그림을 머릿속에서 종합해내는 과정이 사라져버렸고 대신 줄거리, 감각적인 영상, 스펙터클한 장면만 중요해졌어요. 영화가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하정우는 처음부터 반짝반짝 했죠”
김 감독은 2007년 최초의 한·미 합작영화인 ‘두번째 사랑’을 찍었다.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받아 든 이창동 감독과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가 제작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할리우드의 유명 프로듀서들도 합류했다. 여주인공으로는 할리우드 스타인 베라 파미가가 캐스팅됐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하정우도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정우에 대해 묻자 그는 “정우는~”이라며 친근감부터 표시했다. “정우는 처음부터 반짝반짝했어요. 2005년 한·미 제작자들과 함께 부산영화제에 갔다가 우연히 정우가 출연한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게 됐는데 이구동성으로 ‘저 배우 누구냐’ 그랬죠. 실제로 만나보고 나선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녔어요. 이 친구는 그냥 연예인이 아니라 이미 대형 배우라고. 예전에 최무룡이나 김진규를 봤을 때 느꼈던 카리스마 있잖아요. 흑백영화를 뚫고 나오는 그 엄청난 존재감.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싶었는데 그에게서 그게 보였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어디서 이런 배우가 튀어나왔지 싶었죠.”

그는 2009년 한국 여성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최근엔 신작 ‘파이널 레시피’ 촬영을 마쳤다. 한·미·중 3개국이 참여해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된 이 영화는 인기 스타 량쯔충(楊紫瓊·양자경)이 주연을 맡아 벌써부터 국제영화제 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슈퍼주니어-M’ 멤버인 헨리도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량쯔충은 프로 중의 프로”라고 평가했다. 태국 촬영 때 섭씨 35도를 넘는 날씨에다 화덕이 50개나 놓여 있는 찜통 더위 속에서 NG 한 번 내지 않더라는 거였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첫 테이크에서 끝냈어요. 우는 연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큐에 맞춰 울기 시작한 뒤 컷을 해도 감정에 몰입돼 눈물을 멈추질 못하더라고요. 또 자기가 출연하는 장면이 아닌데도 ‘현장을 느껴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며 늘 촬영장에 나와 있곤 했죠. 왕언니가 그러니 다른 배우들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스태프를 챙기고 아우르는 내공도 대단했어요.”

그는 1년간 미국에 머무는 동안 서울을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번 한국영화제에 이어 한국을 알리기 위한 두 번째 프로젝트인 셈이다. 여배우전(展)도 준비 중이다. “오늘날 영화산업에서는 여배우가 하나의 페르소나를 갖는 게 남자배우보다 훨씬 힘든데, 운 좋게도 베라 파미가와 량쯔충이란 훌륭한 배우와 일하면서 여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그가 지향하는 감독상은 어떤 모습일까. “음…, 자기가 가진 모든 걸 영화 안에 녹여내고 표현해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감독?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얘기가 5개 정도 있는데 모두 영화로 내놓고 싶어요.”

Source: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

<두번째 사랑>김진아 감독

<두번째 사랑>을 내놨다. 한미 합작에, 할리우드 배우인 베라 파미가가 출연했다는 이유로 많은 화제를 낳고 있지만 영화가 가진 파생력은 보이는 것 이상이다. 고정적인 인종 간 성역할을 뒤바꾼 멜로 드라마를 통해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깊고 크다.

<두번째 사랑>의 출발은?
원래 영화연출을 가르치러 하버드 대학에 갔는데, 학과에서 학생들이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으니 강의를 개설하자고 했다. 소개 수준에서 해보자고 해서, <지옥화>부터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한국영화의 역사를 다뤘다. 그 와중에 50~60년대 한국영화를 재발견했다. 어릴 때는 울고 짠다고 뭐라 했는데 서구에서 영화교육을 받고 다시 보니까 쇼킹했다. 그리고 너무 잘 만든 영화들이었다. 나는 언제나 ‘여자의 욕망’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려고 욕심을 낸다. 더 큰 화두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다. 60년대 멜로 드라마들을 보면 8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생생한 여자 캐릭터들이 있다. 그런 걸 보면서 멜로라는 게 진짜 엄청난 장르라고 생각했다. <자유부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자매의 화원>의 한국적인 멜로를 어떻게 내 영화와 혼합할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멜로가 가진 기본 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힘이 있다. 그런 것에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에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인 소피(베라 파미가)가 너무 한국적인 백인여자라 이상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미국 백인 여자의 이미지는 딱 <섹스 & 시티>의 4명인 거 같다. 가정주부라면 <위기의 주부들>을 떠올리고. 그거는 정말 희화화된 거다. 미국이야말로 진짜 보수적이고 청교도적인 사회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산다. 미국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이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돈을 벌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밥값을 못하는 사람이고, 어마어마하게 헌신적으로 집안일을 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 강박이 되게 크다. 그리고 한국에선 남자건 여자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실직’인 것 같은데, 미국 애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배우자나 애인의 외도다.

소피의 시댁인 한인가족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의도적인 건가?
앤드루(데이비드 맥기니스) 집의 경우는 옛날 한국 이민자들의 가치관을 답습한 가정이다. 이민 1세대는 온갖 허드렛일을 참아냈고, 자식들이 대신 기대하는 가치를 이뤄주길 바랐다. 미국 내 한인사회는 한국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 장면들이 리얼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이 한인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도 없다. 궁극적으로 소피의 소외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했던 배경이다. 금발머리 백인에 8등신인 소피는 주류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캐릭터인데 어쩌다가 한인사회에 오게 돼서 상상을 초월하는 소외감을 느낀다.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보통은 이민자가 소외를 느끼는데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백인이 그렇다.

한국 남자가 미국에서 정말 인기가 있긴 한 건가?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들을 보면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조차 안하는 것처럼, 미국에서의 한국인도 그렇다. 실제로 멋있을 수도 있는데 아예 그렇게 보질 않는 거다. 예외적인 존재들도 가끔 있다. 잘 생기고, 백인 같은 체력에, 재력도 있고, 아이비리그 나와서 변호사 등의 직업을 가진 한국 남자들. 그 정도 돼야 백인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들을 한다. 그게 영화 속에서 앤드루 캐릭터다. 그는 아내인 백인 여자를 트로피처럼 꿰어 차고 있는데, 성적으로 무능하다. 반대로 막노동으?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심지어 같은 아시안계 여자들에게조차 성적으로 무시당하는 그런 남자인 지하(하정우)가 섹시한 남성으로 보인다.

너무 전통적인 멜로여서인지 옛날영화 같기도 하다.
한국관객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정석대로 풀어주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미국에서는 인종적인 전복 하나만으로도 충격이 큰 영화다. 한국은 인종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별 인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계급이나, 사랑의 과정 등 여러 가지 미묘한 전복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찍으면서 한국에서 히트치려면 마지막에 소피가 앤드루에게 맞고 유산해야 한다고 했다. 질질 짜고 피 흘리면서 지하한테 찾아가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해야 한다고.(웃음)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베라 파미가의 재발견이다.
<다운 투 더 본>을 보고 베라 파미가를 좋아했는데, 캐스팅 디렉터가 한참 떠오르는 배우라 잡기 힘들 거라고 했다. 마틴 스코시즈도 그 영화 보고 반해서 <디파티드>의 의사 역을 준 거다. 그녀가 <두번째 사랑>에 덤벼든 이유는 자기 과거 이야기와 비슷해서다. 원래 베라가 재력가 집안의 프랑스 배우에게 시집을 갔다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록밴드의 키보디스트인데 촬영장에 만날 따라왔다.(웃음) 베라가 그 친구랑 너무 깊게 사랑에 빠져서 다 버리고 떠난 과거가 있다. 나보다 소피를 더 잘 이해했기 때??오히려 내가 그녀의 말을 받아 적었다.(웃음)

영화에 관련된 인맥이 눈부시다.
이창동 감독은 미국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 얼핏 뵙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몇 번 술자리를 함께 하며 재미있는 대화를 나눴다. 나무필름 이준동 대표와는 원래 호러영화를 준비했는데 <두번째 사랑>을 보여 드렸더니 이창동 감독이랑 같이 읽어 보고 만들어 보자고 했다.마이클 니먼은 서울 콘서트 때 만나서 연락처를 받았는데 음악 감독을 부탁하려고 한번 전화해 봤다. 시나리오가 좋다며 음악을 맡아줬다.스코어 말고 배경 음악을 고민할 때 자신의 과거 CD를 주며 맘대로 쓰라고 해서 감동 받았다.

할리우드 에이전시인 CAA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번째 사랑>은, 나쁘게 말하면, 한국적인 특성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적인 사회성보다 인종이 큰 거여서 그런 점이 한국관객에게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좋게 말을 하자면, 지역색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영화일 수 있다. 할리우드 사람들에게 어필을 한 부분은 <두번째 사랑>이 보편적인 정서를 이야기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계약을 하게 됐다. 지금 작가와 작업 중인 시나리오는 완전 미국 이야기지만, <두번째 사랑>과 비슷한 점이 많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변모하는 이야기이고, 여자가 원하는 게 뭔지 질문을 하고.

한국영화의 인기가 영향을 줬나?
미국에서 작년과 재작년이 한국영화 붐의 피크였다. 트렌디하고 세련된 애들이면 다 한국영화 보는 거였다.(웃음) 나한테는 당연히 득이 됐다. 특히 마틴 스코시즈는 한국영화를 좋아하는데다가 베라가 <디파티드> 촬영하면서 <두번째 사랑>을 자랑하니까 나한테도 관심을 가졌다. 그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35밀리 필름으로 보고 싶어 해서 구해서 보내주기도 하는 등 계속 교류했다. 일요일 점심 초청을 받기도 했는데 너무 궁금한 게 많다며 한국영화에 대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해대더라.(웃음) 그는 영화에 대해 너무 너무 너무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관객과 소통을 하고 싶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근시일내에 좀 더 한국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관객들이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공부해야할 것 같다. 한국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필요한 영화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할 거 같고.

<두번째 사랑> 김진아 감독(2)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자”

남성감독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일단 남성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만약 남자감독이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면,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이것 하겠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섰는지 물어보기는 했겠지만 말이에요.” 남성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만약에 받아서 만들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외면풍경에 충실한 멜로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소피의 내면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 것에 반해서요.

소피와 앤드류의 초반 베드신 장면은 다소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2세 앤드류에게 금발의 8등신 미녀 소피는 전시용 와이프의 의미가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의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피가 앤드류한테 끌렸던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취욕구 때문이었을 거예요. 반면, 소피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추구하기를 두려워했어요. 

그런 앤드류가 아기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모든 기반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번째 사랑>의 첫 장면이 앤드류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하잖아요. 그때 앤드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남성상의 타격을 스스로 받아요. 사실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임종 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가장 컸을 것 같아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런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하는 정사 신이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성적인 욕망을 그리는 것보다는 앤드류가 표현해야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앤드류는 장례식 장면에서도 굉장히 차갑고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는 사람처럼 보여지잖아요. 소피는 그런 앤드류의 슬픔을 이해하기 때문에 현재 마음을 표현해주기를 바라지만 둘 사이의 열정과 애정은 이미 식어 버린 상태에요. 앤드류한테는 어느 정도 폭력성이 가미된 ‘소리없는 절규’와 같은 정사신이었기 때문에 관객들한테는 건조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극중 두 남자 지하, 앤드류 중에 한 명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지하죠.(웃음) 제가 가지고 있는 사랑관이나 애정관이나 인생관이 시나리오 속에 묻어날 수 밖에 없잖아요. 제가 <두번째 사랑>에서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였거든요. 모든 삶의 원동력은 몸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고요. 극중에서 지하는 소피의 삶을 변화시키는 메신저 역할을 사실은 하는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지하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겠죠.

배우 하정우는 어땠나요?
정말 정우 씨는 어떤 칭찬을 해도 모자라지 않는 배우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정우 씨를 너무나 믿었기 때문에 사사건건 개입을 하지 않았어요. 배우 하정우가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소외감을 통해 지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표현해 낼 수 있도록 자극은 했지만 말이에요. 하정우가 지하라는 캐릭터로 되어주기를 바랐을 뿐이지 촬영장에서 꼬치꼬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라고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저의 믿음이 오히려 정우 씨한테는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신뢰 안에서 정우 씨는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대사가 많은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대사는 영어대사로 해야 하고.(웃음) 그런 것들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를 해준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가 하정우에 대한 연기칭찬을 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지하 역을 한 정우씨의 연기에 리액션을 했을 뿐이다.” 베라 파미가라는 배우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하정우 씨는 현장에서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분출했어요. 

미국 촬영현장은 어땠나요?
미국 촬영현장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이 빨라요. 노조 때문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촬영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25회 차 만에 촬영을 마쳤어요.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해서 컷 수를 줄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웃음) 하루에 평균 34컷까지 소화해 내야 했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결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결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불륜영화의 가장 큰 맹점을 하나 꼽는다면 결말을 짓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에요. 불륜영화는 어떻게 놓고보면 자기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성장영화로 볼 수 있거든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파국을 맞게 되는 과정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다음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같아요. <언페이스 풀> 같은 경우도 어중간하게 열린 결말로 끝내버리잖아요. 불륜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아요. 여자가 파국을 맞던가, 아니면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서 남편과 대충 맞추어가면서 사는 비참한 결말. 그런데 저는 둘 다 용납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극중 소피라는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소피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점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그것을 관객이 느껴주기를 바랬어요. 소피의 아기는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기 때문에 다른 어머니하고는 다르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 여자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사진 속 지하의 여자친구는 누구인가요?
그 친구는 윤주희 씨라고요. 싸이더스HQ에 소속된 배우라고 알고 있어요. 처음부터 연기가 필요한 역은 아니었지만, 존재감이 있어야 하는 역이었기 때문에 여러 여배우의 사진을 받았어요.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은 지하의 과거를 그 사진 하나로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마스크가 굉장히 중요했고요. 또 소피가 그 사진을 봤을 때 지금 이 사람이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한 때는 행복한 삶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소도구였기 때문에 사진 선정에 있어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죠.

바뀐 영화 제목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요. 일단 한국관객들을 위해서는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영어권에서 <네버 포에버>라는 제목은 큰 울림이 있는 제목이지만, 한국에서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무슨 뜻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애매모호한 뉘앙스를 가진 제목인 게 사실이잖아요. 원제가 직역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제목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두번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은 소피의 마음을 <두번째 사랑>이라는 한국식 제목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사랑>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번째 사랑>은 한미합작이고 베라 파마기라는 할리우드 배우가 나왔고 하정우라는 멋진 배우가 영어대사를 소화해냈고 뉴욕에서 촬영을 했고 이런 여러가지 외부적인 이슈거리가 많잖아요. 이런 것들 보다 제가 봐주셨으면 하는 것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적인 울림이에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에게 마음을 준 경험이 있잖아요. 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을 하잖아요. 그것이 짝사랑이건 쌍방향의 사랑이건. 그런 것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관객 여러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아요. 그냥 마음을 열어두시고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편한 마음으로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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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랑> 김진아 감독(1)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한미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김진아 감독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그 집 앞> 등의 작품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는 실력파 감독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극영화 연출과 한국영화 이론 등을 강의하고 있는 그녀는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진심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어 기자를 감동시킨 김진아 감독은 진심이 느껴지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한 명이라도 자신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고, 더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주파수를 가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배우들을 미리 생각해두셨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어요. 작가와 연출을 겸하는 사람으로서 시나리오 쓸 때는 영화는 감독의 것이고, 촬영에 들어가면 영화는 배우의 것이고, 편집이 들어간 후부터는 영화는 관객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소피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지만 정말 맑은 느낌을 가진 헌신적인 느낌의 여자일 거야” 라고 설정해놓고 그려나갔어요. 지하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리려고 했고요.

시나리오를 쓸 때 캐스팅의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그런 우려를 당연히 했었죠. 다행히 저희 캐스팅 디렉터가 대단히 능력이 있는 분이라 많은 여배우들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를 많이 알고 있더라도 영화랑 어울리지 않는다면 안 되는 거잖아요. 노출 신이 많고, 어마어마한 감정의 기복을 오가야 하지만 대사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배우 선정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헌신적인 어머니 상에서 시작했다가 자기 욕망을 찾고 삶을 찾는 여자의 모습을 폭넓게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소피’ 역할에 어울릴만한 배우를 찾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여배우가 필요했거든요. 많은 배우를 추천을 받았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어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기존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배우가 필요했어요. 관객들이 ‘왜 저런 여자가 한국 남자와 저러고 있어’ 이런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웃음) 연기력이 뒷받침되면서도 마스크는 신선해야 했기 때문에 여배우 선정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참에 우연히 <절망의 끝에서>라는 영화를 보게 됐어요. 그 영화를 통해 베라 파미가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기 때문에, 그 배우가 어느 인지도가 있는 배우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어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준 신들린 연기는 저로 하여금 “저 여자 원래 저런 여자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어요. 마약 중독자로 나오는데 너무 리얼하게 연기를 해서 정말 그런 여자로 의심했다니까요.(웃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베라 파미가가 주연한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너무 놀란 게 영화마다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알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캐스팅 디렉터한테 바로 전화를 했죠 “정말 이 배우랑 같이 일하고 싶다.” 캐스팅 디렉터가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1순위에 있는 배우라고 말했을 때 “어머 나는 왜 몰랐지?”라고 내 자신을 자학했어요.(웃음) 캐리비안의 배 안에서 휴가 중인 베라 파미가가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고, 휴가가 끝난 뒤 뉴욕으로 곧장 와서 저를 만났어요. 다른 영화를 찍으러 러시아로 가기 바로 당일에 시간을 내서 저를 만난 거에요. 카페에서 만났는데 소피 역을 이미 하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온 것 같았어요. 저를 보자마자 “소피 역의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할 거야” “그 신에서 어떻게 감정을 처리하면 좋을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서, 그녀를 보는 순간 “내가 그토록 찾던 소피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시나리오 쓸 때와 현장에 있을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하세요?
현장에 있을 때요. 비교가 안 돼요.(웃음) 시나리오 쓸 때는 나름 예술가의 마음을 가지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까 괴로운 일도 많고 외로워요. 사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하는 후반작업도 만만치 않게 괴로워요. 왜냐하면 밀폐된 공간에서 배우와 스탭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써준 결과물을 가지고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막중해서 괴롭고 힘들어요. 반면, 현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어요. 

정말 “나는 이 일을 재미있어서 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배우들과 일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요. 제가 머리 속에서 생각했던 일들을 그림으로 현실화되는 것을 볼 때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고쳐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겁고요.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에서 연출해 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웃음) 사실 미국 CAA에서 보내준 시나리오들이 할리우드에서 진행 예정에 있는 큰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거든요. 크기가 큰 만큼 비슷비슷한 면도 많고요. 왜냐하면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작업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적이 있어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였는데, 안젤리나 졸리가 이미 캐스팅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저보다 이틀 먼저 시나리오를 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기회가 돌아갔어요. 당연히 그런 거장 감독과 경쟁을 할 수 없는 거니까 깨끗하게 물러섰죠.(웃음) 그리고 나서 생각했죠.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배우까지 투입된 영화는 거장 감독한테 뺏기기가 쉽구나. 그때부터 파라마운트가 개발 단계부터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한테는 빠른 길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을 뉴욕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저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많은 인종들이 혼합이 되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안에서 굉장히 분리가 되어있는 도시 또한 뉴욕이라는 사실이에요. 계급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업퍼 이스트 사이드라는 곳에 가면 주류사회로 편입하고 싶은 사람들을 쉽게 접하게 돼요. 그리고 차이나타운에 가면 여기는 중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야말로 오리지널한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서로를 곁눈질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사람들의 시선 교환에서 저는 늘 섹시함을 느꼈어요. 개발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 같은 곳을 평생 가 볼 일이 없는 금발의 부유한 백인여성이 지하라는 남자를 쫓아갔을 때 그 풍경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다가 나온 곳이 뉴욕이라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문화적, 인종적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으로 뉴욕을 선택하게 되었죠.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요?
저도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요. 2~300백만 불 사이라고 알고 있어요. 더 많이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제작비만 놓고 봤을 때 뉴욕에서 찍었지만 미국 영화로 치면 상당히 저예산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의 경우 저예산 영화에 배우들이 출연했을 때 상업영화하고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접근을 해주어요. 스탭들도 무료봉사까지는 아니었지만 헌신봉사를 했어요.(웃음) 그들이 평소 받는 것에 1/10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참여를 해주었기 때문에 <두번째 사랑>은 탄생될 수 있었어요.

영화감독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나는 멋있는 영화감독이 되고야 말겠어.”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꾸었던 사람은 아니에요.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펼쳐나갈 매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영화를 선택하게 된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다른 매체보다 더 발언의 힘이 센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요. 이런 식으로 유기적으로 점차 영화라는 매체에 다가갔고, 영화인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요.

감독으로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을 꼽으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 중에 본받고 싶은 감독은 이안 감독이에요. 중국에서 저예산 영화를 두 편 만들고 나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후부터는 장르를 종횡 무진하면서 영화를 연출했어요. 할리우드 상업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작가로서 목소리를 잃은 적은 없어요. 그 분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한 번은 시리즈로 몰아서 일주일 동안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섭렵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그 분의 영화에서 언제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사가 있었어요. 굉장히 다른 영화들이고 굉장히 다른 장르라서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를 그렇게 몰아서 보니까 주인공이 울분을 토하면서 말하는 “니가 내 마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이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외로움이나 소통의 문제구나.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다 못해 <와호장룡> 같은 무협영화에서마저 장쯔이가 울분을 토로하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도 엠마 톰슨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드러냈죠. 그것을 보면서 굉장히 존경스러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이안 감독처럼 다양한 장르에 욕심이 많은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에는 하나에요.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추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욕망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회와 교육에 의해서 길들여져서 자기가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지, 실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정말로 힘든 것 같아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기가 힘들고요. 한 여성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을 때, 그리고 그것을 추구했을 때 발생하는 일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화두에요. 주인공이 그런 일에 빠지면서 슬픈 일이 발생하면 멜로영화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면 그건 공포영화가 되는 거겠죠. 소재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장르 자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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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몸이다

<두 번째 사랑>의 김진아 감독

“미국의 에이전트 CAA와 계약을 맺었고 파라마운트사와 새 영화도 준비 중이다. 이제 전업감독 해야지. 3년째 강의했던 학교 수업도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끝낼 예정이다. 감독이 연출로 밥 먹을 수 있으면 선생 노릇 안 해도 되지 않겠나. (웃음)” <두번째 사랑>을 만드는 동안 김진아 감독은 몸이 몇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살았다. 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하버드대학 영상예술학부 초빙교수로서 매 학기 두 과목씩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해야 했다. 여름방학 동안 25회차로 촬영하고 학기 시작한 뒤로는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강의하고, 목요일에 뉴욕으로 날아가 편집하고, 다시 주말에 보스턴으로 오는 살인적인 일정을 보냈다. 고된 땀이 빚어낸 결과물은 결이 고운 멜로드라마로 나왔다. 백인 여성이 두명의 한국계 남성 사이에서 자기의 욕망을 찾는 내용이다. 한·미 제작사의 실험적인 합작품이자 뉴욕 독립영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진아 감독 편에서 본다면, 1950년대 미국의 가족멜로드라마와 한국의 50, 60년대를 풍미한 통속멜로드라마가 만나기를 바랐던, 더글러스 서크와 신상옥의 결합을 꿈꾼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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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마운트와 계약한 새 작품은 어떻게 돼가나.
개발 중이다. 선댄스에서 5일 동안 여섯개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개발팀을 만났고 그중 파라마운트를 선택한 건데, 에이전트를 통해서 스크립트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었다. 그중에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여자주인공이기도 했고. 누가 붙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젤리나 졸리라고 하기에 무조건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 뒤 에이전트에게 전화가 온 거다. 이틀 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가져갔다고. 정말 좋은 스크립트는 그런 사람들이 훔쳐가는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하고 경쟁할 순 없지 않나. (웃음) 그래서 아예 그럴 바에야 초기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달라고 했다. 여자 두명이 주인공이고, 연기파 여자배우 두명을 붙일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다. <두번째 사랑>의 히치콕 버전이랄까. 평범한 가정주부 옆집에 굉장히 예쁜 독신 여성이 이사오면서 그 둘의 정체성이 바뀌어간다는 묘한 사이코스릴러다. 지금 작가하고 초고를 같이 써가는 중이다. 한국말로 하면 <질투하는 여인>(The Jealous Woman) 정도 될 것 같다. 파라마운트에서 생각하는 건 나오미 왓츠와 니콜 키드먼인데, 그 정도 스타를 캐스팅하려면 개발 단계에서부터 배우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거라 지금 그 작업 중이다. 올해 가을까지 초고를 완성하고, 겨울쯤부터 구체적인 캐스팅에 들어가려고 한다.

선댄스에서는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건 민망하지만(웃음), 그랬다. 원래 나는 시사회장에 메모지와 수첩을 들고 가서 관객의 반응을 적는다. 여기서 웃고 저기서 우는구나, 이런 걸 체크한다. 그런데 선댄스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몰입해서 보니까, 그렇게 체크하는 행동 자체가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만뒀다. 메인 극장에서 상영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는데 나 같은 냉혈한도(웃음) 눈물이 핑 돌고 한국식으로 90도 인사하게 되더라.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더글러스 서크 영화처럼 정석대로 만든 거라서 그런가보다.

처음에는 호러영화를 구상했다고 들었다. 그러다 하버드 초빙교수로 갈 즈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알고 있다. 그 시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이 있었나.
나는 지금도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르는 호러와 멜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 화두는 결국 여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일을 알고 그걸 할 때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것인데, 그때 무서운 일이 생기면 호러고 슬픈 일이 생기면 멜로인 거다. 그때는 호러가 맞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버드에 갔을 즈음, 내가 미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미국이 별세계로 보였다. 미국 지식인층의 심장부 역시 골수 백인사회라는 걸 깨달았다. 그곳에서 내가 아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던 곳은 차이나타운이었다. 보스턴 차이나타운은 뉴욕 차이나타운하고 또 달라서 되게 우울하다. 거기서 아시아 남성들이 완벽하게 무성화한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여성의 욕망 외에 아시아 남성의 성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생각하게 된 거다. 그게 두 남자 캐릭터가 나온 계기인데, 소피(베라 파미가)의 남편인 앤드루(데이비드 맥기니스)는 그나마 성적인 존재로 여겨질 만한 전문직 아시아 남자지만 그 사람이 사실은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불법체류자인 지하(하정우)야 말로 꿈틀거리는 생명력과 건강한 몸을 가진 남자라는 두 극단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내가 두 번째 학기부터 한국영화 강의를 맡게 되면서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원래 좋아했고 세미나 형식이라 부담없이 맡게 되었는데, <하녀> <자유부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한국 고전영화들을 프린트로 새로 보면서 멜로라는 장르가 이렇게 대단하구나, 느낀 거다. 그 전까지 여자의 욕망을 호러로 풀어보려 했다면, 방향을 바꿔 멜로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특정한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장면화한 것이 있나
무의식적으로 보자면 <지옥화>에서 최은희가 피아노 치는 장면. <자유부인>에서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장면. <자매의 화원>의 의상 컨셉. 그리고 <씨받이>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비즈니스로 시작한 것이 사랑이 된다는 것.

소피 역의 베라 파미가는 금발의 백인 여배우인데도 이상하게 성적인 면보다 모성애가 더 강조되어 보인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는 좋은데, 말하자면 베라는 백지 같다. 백치가 아니라. (웃음) 주변 색에 따라 눈동자 색이 바뀌는 희귀한 눈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배우로서 베라 자신도 그렇다. 완전히 변신이 가능한 배우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소피 캐릭터는 부잣집 마나님 느낌이 좀 있었는데, 베라를 보는 순간 순진한 매력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굳혔다. 미국은 그런 캐릭터 내용을 상의할 때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배우와 직접 한다. 되게 똑똑한 친구인데 할리우드에서 여자배우들이 섬세하지 않게 그려지고 맡을 역할이 많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다. <디파티드> 때에도 각본에 불만이 많았고, 마틴 스코시즈도 그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영화에서 어떤 자기 대사는 자기가 쓰기도 했으니까. 마틴 스코시즈가 그걸 인정해줬다. 나하고는 몹시 잘 맞아서 할리우드에서 그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노출신도 아주 편하게 찍었다. 복도에서 지하와 소피가 섹스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원래 없던 장면이다. 그런데 베라가 “여기서는 팬티 내리고 엉덩이에 키스 한번 해줘야 감정이 산다”고 해서 들어간 장면이다.

누가 봐도 이전까지의 작품이 개인적인 심리의 심연을 보여준 거라면 이번 영화는 대중적인 장치를 많이 고려한 영화다.
일단 나 개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고 해야겠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면 왜 그런 말하지 않나. “모든 여자애들에게는 자기 발가락 자기가 찍으면서 좋아하는 때가 있다”고. 내 생각에 여자는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자기 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그때 대처할 수 있는 건 나르시시즘밖에 없다. 우선 자기를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나도 많이 헤맸던 때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나 <그 집 앞> 만들던 시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심만만해서 이 세상에 내 자리는 어디인가 고민하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서른 넘어가면서 든 생각은 나는 여자고 영원히 유목민이라는 거다. “어차피 위대함은 그들(남성)의 것이니까”라는 말을 자주 하는 선배도 있다. 동의한다. 그러면서 나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어떤 기계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관심이 없어졌다. 또 한 가지는 직장 생활하면 왜 사람이 건강해지는 면이 있잖나. 3년 동안 학교에서 일하면서 시간적으로 고생하다보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다 잊었다. 여자감독이 갖는 어떤 한계가 있다. 자기를 투사하려는 자전적인 성향을 못 벗어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작품도 개인적인 나하고는 상관없는 스릴러다.

방법론은 바뀌었겠으나 화두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의 욕망이 언제나 화두다. 다만 <그 집 앞>의 두 주인공 가인과 도희가 겪는 몸의 여행, 말하자면 임신, 낙태, 새로운 사람에 대한 성욕 등이 두 사람에게 양분되어 있었다면, 이번에는 소피라는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는 느낌이다.
맞다. 아마 그것도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지면서 생긴 것 같은데, <그 집 앞>까지는 영화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거의 없지 않나. 자기 자신과의 관계만 있을 뿐. 그런데 그걸 관계 안에서 풀게 되면서 한 여자로 합쳐지고, 대신 두 남자가 생긴 것 같다.

아시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음 백인 남성 둘을 배치하는 영화의 설정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을까 추측해봤다.
그러면 아마 지금과 다른 영화가 됐을 거다. 이 영화에서의 미학적 전략이 있다면 모든 장면에 역설이 들어갔으면 하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내러티브도 남편에 대한 희생이 남편에 대한 배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또 성모 마리아가 되고 싶은 욕망이 창녀로 전락하는 것이고. 그 역설의 일환 중 하나가 미국에서 가장 주류라 할 수 있는 백인 여성이 아시아 남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었다. 백인 여성이 아시아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그렇게 오래 미국에 살았어도 두세 커플 이상 본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상식을 뛰어 넘는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미국사회에서 마이너리티는 사실 앤드루인데 그의 집안에서 마이너리티는 오히려 소피다. 만약 아시아 여성과 미국 남성이었다면 그런 느낌이 나기 어려웠을 거다. 아시아 여성은 전세계에서 가장 하층계급이니까. 힘의 전복을 줄 수가 없다. 또 한 가지는 아까 말한 것처럼 아시아 남성의 무성화한 몸에 섹스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몸의 사랑이 정신의 사랑을 넘어서는 이야기라는 게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몸에 대한 화두는 앞으로도 본인에게 중요할 것 같다. 여성의 환경이나 사유에 대해 발언하는 방법보다는 늘 여성의 몸에 대해 더 중요하게 말한다.
사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몸이다. 비록 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내가 세상과의 접점을 찾으려고 할 때 내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치열하게 파냈던 게 몸이라는 부분이다. 여자라는 문제를 각인하게 하는 건 결국 몸이니까. 몸에서 시작하지 않는 혁명이나 사유는 의미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너무 투사 같은 말인가? (웃음)

영상의 결이 곱다. 촬영은 누가 했나?
매튜 클락이라는 사람인데 이 작품으로 입봉했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메인 상업영화지만 미국에서는 저예산영화다보니 스탭을 구하기가 좀 힘든 경우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친구는 사람 얼굴을 찍는 데 따듯함과 애정이 느껴지게 하는 재주가 있어 같이 일하게 됐다. 내가 원하는 게 아주 뚜렷했기 때문에 그걸 잘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고. 같이 만나서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보니 말도 잘 통했고.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 나오자마자 갑자기 급부상해서 지금 잘나가고 있다. 사실은 이런 면도 있었다. 베라가 <조슈아>를 끝내고 되게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촬영장에서는 치어리더가 돼서 기쁘게 해줘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이 촬영감독이 되게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하고 같이 촬영장에서 코미디 복식조가 돼줘야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감독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작가지만 촬영장에서는 배우들이 잘 놀게 여건을 만들어주는 치어리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 합작영화의 연출자로서 차후에 이런 시도를 하려는 연출자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을 것 같다.
이런 건 사실 제작자가 답해야 할 말이긴 한데…. 아, 이런 걸 말하면 좋겠다. 베라와의 인연으로 마틴 스코시즈를 알게 되어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그 사람이야말로 엄청난 거장 아닌가. 안 어울려 보여도 내가 의외로 그 사람 영화를 좋아한다. (웃음) 그런데 그 노련한 거장이 식사 자리에서 꺼내는 얘기가 내가 영화 찍으면서 겪는 고충과 어찌나 똑같던지. 잭 니콜슨은 스탭들이 몹시 어려워해 연락하기를 꺼리는 통에 자기가 매번 연락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는 말이나, 영화 이거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하는 말이나. (웃음) 영화란 크기만 다르지 어디가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뉘앙스와 구체적인 예의범절이 다를 뿐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물론 규모나 까다로운 법적 문제들이 더 있긴 하지만 사람을 중요시해야 하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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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포에버> 김진아 감독

<네버 포에버>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
7월 촬영을 시작해서 8월29일 끝마쳤고, 지금은 뉴욕영화의 후반작업을 거의 다 하는 포스트웍스라는 곳에서 편집 중이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원래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여자의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그것을 언제나 화두로 생각하고 있자니까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항상 깨고 싶어하는 것이 성모 마리아 신화인데, 여자는 어머니와 창녀가 있다는 것 말이다. 둘 다 남자에게 뭔가(밥과 몸)를 준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굉장히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여겨지잖나. 그런데 그게 사실은 같다는 것을 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른 한축으로는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게 인간의 비극인데, 그게 가장 쓰라린 감정으로 느껴지는 게 멜로인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매우 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
하버드대학 초청교수를 맡고 백인 도시인 보스턴에 살면서, 인종적인 자각 같은 게 생겼다. 특히 하버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백인 중심적이다. 우리 학과에 27명의 교수가 있는데 유색인종은 나뿐이다. 또 하버드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수업을 했을 때 <자유부인>이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한국 고전영화를 다시 보면서 멜로가 정말 위대한 장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보수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여성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들이라 전복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런 전복적인 요소의 결론이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굉장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모든 것이 섞이면서 어느 날 갑자기 탁 터진 게 <네버 포에버>의 줄거리였다. 거짓말이 아니라 하루 만에 구상이 끝났고, 3일 만에 신 넘버가 있는 트리트먼트를 썼다.

정말 장르적 의미에서 멜로영화인가.
진짜 멜로영화다. 인종, 미국, 불임, 뉴욕처럼 곁가지 요소가 있지만 영화 자체를 보면 정통멜로다.

갑자기 장르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 집 앞>은 유학 끝낸 지도 얼마 안 됐고 한국에 그런 영화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게 만들어진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나서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 집 앞>은 정말 작가의 독백 같은 영화였고, 이렇게 스스로를 반추하는 영화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멜로라는 장르에 더 끌린 것 같다. 가장 통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베라 파미가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우리 캐스팅 디렉터가 굉장히 유능하다. (웃음) 내가 시나리오를 보냈을 때, 파미가는 휴가차 외국에 있었다. <인 트랜지트>라는 영화 촬영을 위해 러시아로 가기 전 뉴욕에 하루 들른 날 나를 만나러 왔다. 시나리오를 배에서 읽고 내리자마자 나를 만나러 온 거다. 시나리오를 굉장히 좋게 봤던 것 같고, 올해 상반기에만 4편을 찍는 등 바쁜 와중에도 출연을 결정했다.

베라 파미가와 하정우의 호흡이 잘 맞았다고 들었다.
촬영하기 전 하정우와 파미가가 하루 정도는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자리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리허설이 아니라 서로를 익힌다는 정도로 감정없이 평이하게 대사를 읽으면서 시나리오 리딩을 하는데, 한신이 끝나자 파미가가 시나리오를 덮더니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데 파미가는 매우 흥분해서 ‘저렇게 에너지가 센 배우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하정우에 대해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쪽 공동제작사인 복스3(VOX3)와는 어떻게 접촉했나.
줄리아나 브루노라고 하버드 동료 교수가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복스3의 대표인 앤드루 피어버그다. 파티할 때 자연스럽게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는 함께 작업하자고 하더라.

한국 영화사가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천차만별인 것 같다. 다른 영화는 몰라도 내 영화는 100% 미국 스탭과 100% 미국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어떨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이게 한인들의 삶을 다룬 게 아니니까 이곳 스탭들은 미국영화에 더 가깝게 생각하는 눈치다. 하여간 그런 프로젝트들이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특급 작곡가인 마이클 니먼이 음악을 맡는다고 들었다.
2001년 한국에서 열린 마이클 니먼의 콘서트에 갔는데, 니먼의 초청을 받은 김기덕 감독이 와 있었다. 그런데 김 감독님이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니먼과 친해졌다. 프리 프로덕션 도중 음악감독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마이클 니먼을 안다고 하니까 모두들 코웃음을 치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하더라. 열 받아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하겠다고 했다. 돈문제를 물어봤더니 자기는 ‘시나리오가 좋으면 돈은 안 보고 일한다’고 하더라.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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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사랑 이야기” 김진아 감독 인터뷰

<김진아의 비디오 다이어리>(2001)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초청작 <그 집 앞>(2003)을 만든 김진아 감독, 그는 현재 한미 합작영화 <네버 포에버>를 연출 중이다. 김진아 감독을 만나 <네버 포에버>에 대해 들어보았다. 

<네버 포에버>는 남녀문제, 가족문제가 미국사회 내에서의 인종문제와도 겹치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모든 남녀관계, 또 모든 개인적인 관계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도 남녀관계들 중 계급문제와 무관한 커플이 과연 몇 쌍이나 있을까? 다시 말해 이 영화를 특별히 인종문제나 이민자문제를 다루기 위해 '기획'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잘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 게으른 성향과 내가 원했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에 또 다른 레이어를 주게 된 것 같다. 

당신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가장 장르성이 강한 것 같다. 
100퍼센트 멜로드라마다. 워낙에 꼭 영화뿐 아니라 근대극으로서 멜로드라마에도 관심이 많다. 영화 쪽으로는 더글라스 서크 같은 50년대 할리우드 멜로영화들의 팬이기도 하지만, 가장 자극을 많이 받은 것은 오히려 60년대 한국의 멜로영화들이었다.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됐는데, 당시 극장 가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었던 '아줌마'들을 위한 이 멜로물들이 얼마나 큰 전복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새삼 놀랐다. 그 가능성을 부활시켜 가장 멜로적인 형식으로, 가장 현대적인 주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베라 파미가가 연기하는 소피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가? 
소피는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원래 소피는 영화가 시작될 즈음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요구를 들어주고 실현해주는 것이 자신의 목표인, 그러나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여자다. 그러나 가난한 한국 이민자인 지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욕망(삶 자체에 대한)을 재발견하게 된다. 베라와의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 작가이자 감독인 나보다 더 잘 소피를 이해한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피의 작은 제스처들, 앞머리의 컬, 걷는 모습 하나까지도 같이 고민해 만들어낸 것들이다. 나는 배우를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캐릭터를 실현해줄 인형으로 보지 않는다. 반대로 배우에게 영감을 받고 배우가 가진 필모의 페르소나는 물론 자연인으로서의 매력까지도 적극적으로 영화에 사용한다. 베라는 이런 나의 성향을 무척 반가워했다. 또 베라를 만나고 난 후 베르메르와 모딜리아니, 드가,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 등 화가들의 그림에서 영감 받은 소피의 이미지 메이킹 자료들을 보냈는데 그걸 소중히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해냈다. 

상대역인 하정우와 데이비드 맥기니스에 얘기해준다면?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영향이 컸다. 그를 탐내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하정우에게는 연예인이 아닌 '배우'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최무룡 선생님이나 김진규 선생님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옛날 배우의 냄새 말이다.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주말을 끼고 하루 만에 답변이 왔다. 그 박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하냐고 묻는 말에 '외모가 제일 중요해요'라고 말하곤 해서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들고는 한다.(웃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외모는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자연인으로서의 매력,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와 아우라, 또 영화의 배역에 맞게 자신을 만들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유연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백지 같은 여백까지 있어야 한다. 데이비드는 연기 경력이 길지 않아 배우로서는 크게 입증된 바 없지만, 오로지 이미지와 가능성을 보고 결정했다. 내면연기가 필요한 힘든 역을 잘 소화해줘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인, 미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번과 같은 합작영화를 만드는 감독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평소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처음 베라를 만났을 때 베라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한국남자와 결혼한 미국여자일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마 내 이름의 영문 철자 ‘Jina'가 영어로도 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같았으면 그런 말에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소위 정체성 논의가 정점에 달하기도 했었고, 미국에 처음 유학 와서 아시아 여자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자각했을 때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나는 나라는 생각을 한다. 일단 '나와 같은 무리'를 찾아 섞이기에는 너무나 많이 고립돼 있다. 하버드 시각예술 학부 교수 27명 중 유색인종은 나 하나다. 한국학생이 그렇게도 많은 하버드지만 예술 학부 전체에 한국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미국영화계에서도 아시아 여성 감독은 거의 찾기 힘들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여자라는 것, '결여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행복해져버린 까닭이다. 옛날에는 늘 생각했었다. “나는 이렇게 작은데 왜 내 한 몸을 편하게 뉘일 자리가 세상에는 없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늘 안정에 대한 그리움이 솟고 정착하고 싶을 때마다 존경하는 한 선배 언니가 하는 말처럼 ’어차피 위대함은 그들의 것이니까‘ 라고 속삭이고 훌훌 털고 일어난다. 이제는 정말 삶의 유목민이 된 것처럼. 지금은 그래서 편하다. 마초들이 판치고 백인들만이 우글대는 촬영장에서도 나는 촬영조끼보다 내 몸에 더 편하게 맞는 앞치마를 입고 일했다. 

하버드에서 진행한 한국영화 강좌나 한국영화인들의 특강의 반응은 어땠나? 
이상하게 그 한국영화 강좌가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는데, 사실 나는 한국영화를 가르치기 위해 하버드에 초청된 것이 아니고, 시각예술 학부에서 영화를 가르치기 위해 간 거다. 아직 한국인 학생이 없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버드에도 영화과가 있다. 그러던 중 한국감독이라는 이유로 한국영화 강좌까지 잠시 맡게 된 것이다. 그 강좌는 두 학기만 하고 영화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그만뒀고 지금은 영화제작 강의만 하고 있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국영화를 가르쳤던 작년 가을을 되새겨 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학풍의 하버드 같은 경우 조심스러운 편이다. 임권택 감독, 김홍준 감독, 김동원 감독, 이재용 감독 등을 초청해 영화제를 열기도 했는데 거의 모든 상영이 매진이었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니 지금 한다면 또 다를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공공연한 한국영화광이고 베라는 그의 <디파티드>에 출연까지 했다. 
베라 같은 경우 한국영화를 소문으로만 듣다가 한국영화광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덕에 시달리고 있는데,(웃음) 과장 하나도 안 하고 스콜세지는 거의 매일 베라에게 한국영화 DVD를 택배로 보내준다. 내가 같이 놀고 있을 때 받은 것만 해도 <질투는 나의 힘>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적어도 대여섯 개는 된다. 심지어는 베라가 스콜세지에게 하정우 자랑을 했더니, 스콜세지가 도대체 어디 나온 배우냐고 묻기에 <용서받지 못한 자>에 나왔다고 하자, 마침 그 영화를 보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비단 스콜세지뿐 아니라 한국영화가 여기 영화지식인들에게는 가장 핫 아이템인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