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사랑>김진아 감독

<두번째 사랑>을 내놨다. 한미 합작에, 할리우드 배우인 베라 파미가가 출연했다는 이유로 많은 화제를 낳고 있지만 영화가 가진 파생력은 보이는 것 이상이다. 고정적인 인종 간 성역할을 뒤바꾼 멜로 드라마를 통해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깊고 크다.

<두번째 사랑>의 출발은?
원래 영화연출을 가르치러 하버드 대학에 갔는데, 학과에서 학생들이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으니 강의를 개설하자고 했다. 소개 수준에서 해보자고 해서, <지옥화>부터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한국영화의 역사를 다뤘다. 그 와중에 50~60년대 한국영화를 재발견했다. 어릴 때는 울고 짠다고 뭐라 했는데 서구에서 영화교육을 받고 다시 보니까 쇼킹했다. 그리고 너무 잘 만든 영화들이었다. 나는 언제나 ‘여자의 욕망’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려고 욕심을 낸다. 더 큰 화두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다. 60년대 멜로 드라마들을 보면 8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생생한 여자 캐릭터들이 있다. 그런 걸 보면서 멜로라는 게 진짜 엄청난 장르라고 생각했다. <자유부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자매의 화원>의 한국적인 멜로를 어떻게 내 영화와 혼합할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멜로가 가진 기본 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힘이 있다. 그런 것에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에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인 소피(베라 파미가)가 너무 한국적인 백인여자라 이상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미국 백인 여자의 이미지는 딱 <섹스 & 시티>의 4명인 거 같다. 가정주부라면 <위기의 주부들>을 떠올리고. 그거는 정말 희화화된 거다. 미국이야말로 진짜 보수적이고 청교도적인 사회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산다. 미국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이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돈을 벌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밥값을 못하는 사람이고, 어마어마하게 헌신적으로 집안일을 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 강박이 되게 크다. 그리고 한국에선 남자건 여자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실직’인 것 같은데, 미국 애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배우자나 애인의 외도다.

소피의 시댁인 한인가족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의도적인 건가?
앤드루(데이비드 맥기니스) 집의 경우는 옛날 한국 이민자들의 가치관을 답습한 가정이다. 이민 1세대는 온갖 허드렛일을 참아냈고, 자식들이 대신 기대하는 가치를 이뤄주길 바랐다. 미국 내 한인사회는 한국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 장면들이 리얼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이 한인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도 없다. 궁극적으로 소피의 소외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했던 배경이다. 금발머리 백인에 8등신인 소피는 주류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캐릭터인데 어쩌다가 한인사회에 오게 돼서 상상을 초월하는 소외감을 느낀다.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보통은 이민자가 소외를 느끼는데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백인이 그렇다.

한국 남자가 미국에서 정말 인기가 있긴 한 건가?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들을 보면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조차 안하는 것처럼, 미국에서의 한국인도 그렇다. 실제로 멋있을 수도 있는데 아예 그렇게 보질 않는 거다. 예외적인 존재들도 가끔 있다. 잘 생기고, 백인 같은 체력에, 재력도 있고, 아이비리그 나와서 변호사 등의 직업을 가진 한국 남자들. 그 정도 돼야 백인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들을 한다. 그게 영화 속에서 앤드루 캐릭터다. 그는 아내인 백인 여자를 트로피처럼 꿰어 차고 있는데, 성적으로 무능하다. 반대로 막노동으?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심지어 같은 아시안계 여자들에게조차 성적으로 무시당하는 그런 남자인 지하(하정우)가 섹시한 남성으로 보인다.

너무 전통적인 멜로여서인지 옛날영화 같기도 하다.
한국관객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정석대로 풀어주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미국에서는 인종적인 전복 하나만으로도 충격이 큰 영화다. 한국은 인종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별 인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계급이나, 사랑의 과정 등 여러 가지 미묘한 전복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찍으면서 한국에서 히트치려면 마지막에 소피가 앤드루에게 맞고 유산해야 한다고 했다. 질질 짜고 피 흘리면서 지하한테 찾아가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해야 한다고.(웃음)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베라 파미가의 재발견이다.
<다운 투 더 본>을 보고 베라 파미가를 좋아했는데, 캐스팅 디렉터가 한참 떠오르는 배우라 잡기 힘들 거라고 했다. 마틴 스코시즈도 그 영화 보고 반해서 <디파티드>의 의사 역을 준 거다. 그녀가 <두번째 사랑>에 덤벼든 이유는 자기 과거 이야기와 비슷해서다. 원래 베라가 재력가 집안의 프랑스 배우에게 시집을 갔다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록밴드의 키보디스트인데 촬영장에 만날 따라왔다.(웃음) 베라가 그 친구랑 너무 깊게 사랑에 빠져서 다 버리고 떠난 과거가 있다. 나보다 소피를 더 잘 이해했기 때??오히려 내가 그녀의 말을 받아 적었다.(웃음)

영화에 관련된 인맥이 눈부시다.
이창동 감독은 미국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 얼핏 뵙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몇 번 술자리를 함께 하며 재미있는 대화를 나눴다. 나무필름 이준동 대표와는 원래 호러영화를 준비했는데 <두번째 사랑>을 보여 드렸더니 이창동 감독이랑 같이 읽어 보고 만들어 보자고 했다.마이클 니먼은 서울 콘서트 때 만나서 연락처를 받았는데 음악 감독을 부탁하려고 한번 전화해 봤다. 시나리오가 좋다며 음악을 맡아줬다.스코어 말고 배경 음악을 고민할 때 자신의 과거 CD를 주며 맘대로 쓰라고 해서 감동 받았다.

할리우드 에이전시인 CAA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번째 사랑>은, 나쁘게 말하면, 한국적인 특성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적인 사회성보다 인종이 큰 거여서 그런 점이 한국관객에게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좋게 말을 하자면, 지역색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영화일 수 있다. 할리우드 사람들에게 어필을 한 부분은 <두번째 사랑>이 보편적인 정서를 이야기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계약을 하게 됐다. 지금 작가와 작업 중인 시나리오는 완전 미국 이야기지만, <두번째 사랑>과 비슷한 점이 많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변모하는 이야기이고, 여자가 원하는 게 뭔지 질문을 하고.

한국영화의 인기가 영향을 줬나?
미국에서 작년과 재작년이 한국영화 붐의 피크였다. 트렌디하고 세련된 애들이면 다 한국영화 보는 거였다.(웃음) 나한테는 당연히 득이 됐다. 특히 마틴 스코시즈는 한국영화를 좋아하는데다가 베라가 <디파티드> 촬영하면서 <두번째 사랑>을 자랑하니까 나한테도 관심을 가졌다. 그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35밀리 필름으로 보고 싶어 해서 구해서 보내주기도 하는 등 계속 교류했다. 일요일 점심 초청을 받기도 했는데 너무 궁금한 게 많다며 한국영화에 대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해대더라.(웃음) 그는 영화에 대해 너무 너무 너무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관객과 소통을 하고 싶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근시일내에 좀 더 한국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관객들이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공부해야할 것 같다. 한국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필요한 영화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할 거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