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rkstattkino München] GINA KIM: Desire & Diaspora 회고전 인터뷰
Published March 2019 - Source
인터뷰 Susanne Mi-Son Quester
이 인터뷰는 2019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회고전 " Gina Kim: Desire & Diaspora, A Retrospective "를 계기로 진행된 것으로, 초기 작인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이후의 서사적 확장, 그리고 《그 집 앞》과 《두번째 사랑》에 이르는 창작의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어 독일어로 출판되었고, 이후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김진아는 실험적인 비디오 다이어리, 비디오 설치 작업, 대형 극영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지닌 다재다능한 영화감독이자 예술가입니다. 1973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김진아는 22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CalArts)에서 제임스 베닝(James Benning)과 하트무트 비톰스키(Hartmut Bitomsky) 등에게 영화와 미디어 아트를 사사했습니다. 그녀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기록한 비디오 다이어리는 그녀의 첫 장편영화인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의 기반이 되었으며, 미국에서의 외로움과 섭식 장애로 점철된 초기 경험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후의 극영화인 <그 집 앞>과 <두번째 사랑>은 한인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여성의 욕망을 탐구합니다. Werkstattkino 시리즈에서는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뮌헨 초연으로 상영합니다.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의 영상 소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촬영되었고, 장편 일기 버전 이전에 여러 단편 영화로 편집되었는데,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대학 시절 비디오 매체를 처음 접하고, 예술의 '민주화' 가능성—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의 대량 생산 가능성—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비디오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수백 시간의 영상이 축적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곧 이 기록이 개인적 의미 이상을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96년 일기장에는 "지금은 이 작업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이 이미지들의 의미를 설명해 줄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때의 고통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기록하고 보존하려 했습니다.
편집 과정에 대해 특히 관심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지원이 있었나요?
앞서 언급했듯이, 영상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방대한 양의 편집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반복적으로 영상을 시청하면서, 먼저 전체적인 이야기—'서사'라고 할 수 있는—를 파악해야 했고, 각 테이프를 검토하여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제외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때때로 거리를 두기 위해 작업을 중단해야 했기에, 편집에는 거의 2년이 걸렸습니다. 혼란스럽고 좌절감을 느낄 때는 멘토나 친구들에게 일부 영상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고독한 과정이었습니다. 편집 과정을 통해 제가 겪었던 문제들과 화해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비디오 일기를 기록하고 계신가요? 언제, 왜 중단하셨나요?
2000년에 비디오 일기 촬영을 중단했습니다.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비디오 일기를 지속하는 데 점점 흥미를 잃었고, 이미 축적된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쯤 다른 창작 활동이 저를 사로잡았다는 점입니다. 편집을 하면서 특정한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고, 그것들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주로 한국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두 명의 고독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겉보기에는 파편적인 듯 했지만 자세히 보면 신비롭게도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마치 아이가 용도를 모르는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놀듯이, 아무 목적 없이 그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메모해 갔습니다.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의 편집을 마칠 즈음, 노트는 메모로 가득 찼고, 그 조각들을 연결하여 큰 그림을 완성했을 때, 두 명의 여성이 제 노트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두 여성은 《그 집 앞》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 집 앞> 은 두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두 여성 캐릭터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의 의도는 무엇이며, 두 여성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요?
두 여성 모두 자신의 몸, 욕망과 화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타지로 내몰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지만, 그 결과로 극심한 고립을 겪습니다. 이야기와 캐릭터 측면으로 보자면, 그들은 한 남자를 공유합니다—가인의 연인이자 도희의 남편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남자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는 두 여성을 연결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에 관한 것이 아니라 두 여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쓸 때, 저는 수학 함수 Y=1/X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 함수의 그래프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아름다운 곡선을 형성합니다—하나는 양의 영역에, 다른 하나는 음의 영역에. 저는 그 남자를 그래프의 중심(즉, 0)에 두고, 이 수학 함수를 기반으로 두 여성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형성했습니다.
그래프가 시사하듯, 《그 집 앞》의 두 여성은 서로의 거울 이미지입니다. 가인(한자로 家人, 집 + 사람)은 LA에서 집을 떠나지 않는 인물로,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며 유부남과 불륜 관계에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혐오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가두고 굶기며 처벌합니다. 도희(한자로 道姬, 거리 + 여자)는 미국에 살다가 남편이 가인과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으로 떠납니다. 그녀는 여러 남성과의 성관계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서울 거리를 목적 없이 방황합니다.
다음 장편 영화인 《두번째 사랑》는 전적으로 미국에서 촬영되었고, 배우 베라 파미가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백인 주인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야기가 어떻게 '왜' 백인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는 유기적인 과정을 통해 제게 다가오며, 저는 단지 직관을 따릅니다. 제 잠재의식은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흡수하는 신비로운 블랙박스와 같으며, 적절한 순간에 제 자신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저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200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로 이주했을 때, 하버드 주변의 지적 공동체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 인구 구성의 동질성에 놀랐습니다. 대부분 백인인 동료와 학생들은 정말 훌륭했고, 개인적으로 인종 차별을 겪지는 않았지만, 도서관, 영화관, 회의실 등 어디를 가든 제가 유일한 아시아인 또는 유색인종이라는 사실에 묘한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저는 한국 영화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며 50~60년대의 한국 고전 멜로드라마를 다시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영화들 속 여성 캐릭터의 시대를 앞선 전복적인 성격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가졌다는 이유로 결국 타협하거나 처벌받는 결말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두번째 사랑》의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이 조금씩 형성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세 주인공(지하, 앤드류, 소피)은 미국 내 인종, 민족, 국가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이 세 캐릭터에 제 자신을 고르게 나누어 투영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하—한국에서 온 이민 노동자, 앤드류—미국 주류 사회에 진입한 성공한 동양계 미국인, 소피—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억압된 백인 여성. 아마도 저는 이 세 캐릭터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소피를 백인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녀와 제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회고전의 제목으로 ‘욕망과 디아스포라’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두 단어는 감독님의 영화 작업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욕망과 디아스포라는 제 작업 뿐 아니라 제 삶 자체를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키워드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거짓된 이분법에 의해 작동하고 있습니다. 남성/여성, 서양/동양, 외국인/내국인, 인간/자연, 유색인종/백인 등.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해졌지만, 우리가 사유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은 여전히 이분법적 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는 세계를 안과 밖, 우리와 타자라는 식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일단 설정된 경계는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욕망이라는 힘이 이러한 금기와 경계를 흔들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있다고 해서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설립된 세계는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욕망을 통해 인간은 그 경계를 넘게 되고 양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유목적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디아스포라가 형성됩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저는 이제 제 존재의 유목적인 상태를 받아들이고 포용하게 되었지만, 그 상태는 동시에 실존적 멜랑콜리와 강렬한 향수를 남깁니다. 내가 떠나온 것들에 대한, 이제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감정. 그게 디아스포라입니다. 저의 모든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감정들과 사유들을 예술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