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Literature Now] - 붕괴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것들

Published September 4th, 2025 - Source

김진아 (이 글은 영어 원문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올해 초, 나는 집을 떠나야 했다. 로스앤젤레스를 뒤덮은 산불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대피령이 바로 옆 동네까지 내려왔을 때, 나는 하얀 재가 눈처럼 뒷마당에 내려앉는 것을 보며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서류와 노트북, 여권, 현금 같은 필수품들을 챙겼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이 집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배낭 속 물건들은 달라졌다.

주저 없이, 나는 대체 불가능한 것들을 집어 들었다. 증조할머니의 손글씨 책자, 아빠의 박사논문, 가족사진, 어린 시절 내가 그린 그림들. 놀랍도록 고요하고 침착하게 짐을 꾸리고, 연기로 물든 핏빛 황혼 속에 동쪽으로 끝없이 차를 몰았다.

그날 밤, 네바다의 작은 모텔방에서 얇은 매트리스 위에 몸을 웅크린 채 노트북을 열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 순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동시에 얼마나 견딜 수 없이 슬픈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종말은 폭발의 굉음과 함께 오지 않는다. 그것은 단절의 순간이 아니라, 느리고 되돌릴 수 없는 끝없는 하강이다. 그것에 뭐라고 이름 붙일 준비를 하기도 전, 이미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조용한 현재 진행형의 해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깨달음은 절망만을 남기지 않았다. 뜻밖의 명징한 깨달음, 혹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종말의 한가운데를 살아내고 있다면, 남은 모든 순간들은 더 귀해진다. 내 옆의 사람을 사랑하고, 우리가 아끼는 일을 하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예측불가한 기후 속에서도 애호박을 기르고, 설령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그런 순간 들만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진다.

최은미의 소설 《마주》를 읽으며 나는 그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 코로나19 판데믹의 여파 속에서 집필된 이 작품은 작은 양초 공방을 운영하는 삼십대 여성 나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단골손님 중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가게는 폐쇄 위기에 처하고, 곧이어 나리는 공황발작을 겪으며 잠복결핵 진단을 받는다. 이 사건은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만조 아줌마에 대한 기억을 포함해,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퍼올린다.

이어지는 것은 거대한 깨달음이나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 내밀하고 조용한 해체다. 판데믹이 사회적 관계를 끊어내고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면서, 나리는 분열된 자아뿐 아니라 자신에게 코로나를 옮겼을지도 모르는 손님, 수미와의 풀리지 않은 긴장과도 마주해야 한다. 두 사람은 결국 딴산이라 불리는 사과 과수원으로 함께 향한다. 그곳은 기억과 상실, 그리고 화해의 가능성을 위한 은유적 무대가 된다.

《마주》는 속삭임처럼 흘러가며 섬세한 몸짓과 내적 움직임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울림은 놀랍도록 강하다. 여전히 상실과 혼란의 후폭풍 속에 있는 세계에서, 최은미의 글은 판데믹의 의미를 섣불리 진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잔해와 정서적 잔향에 머무른다. 공포, 분노, 기억이 어떻게 몸속에 가라앉는지를 그린다. 마치 하얀 재가 고요히 땅 위로 내려앉는 것처럼.

《마주》를 읽으며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생존이란 단순히 산불이나 전염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한 것이다. 무엇을 앞으로 지고 갈 것인지, 누구와 마주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한국어에서 ‘마주’라는 단어는 단순히 ‘마주하다’라는 뜻을 넘어, 만남과 대면, 그리고 직면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 제목은 이러한 다층적 의미를 품는다—과거와의 마주, 타인과의 마주, 자기 자신과의 마주. 나리처럼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것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판데믹은 산불처럼,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풍경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처럼 우리 또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이전의 자리로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는 새로운 자리로.

그래서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다시 떠나야 한다면 무엇을 챙길 것인가? 너무 늦기 전에 누구와 마주하고 싶은가? 모든 것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지금, 《마주》는 위로가 아니라 연대를 건넨다. 붕괴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여전히 말할 수 있다. 여전히 돌보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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