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피어리]
Published October 2004
제럴드 피어리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모니카 비티를 현대 도시라는 차가운 환경 속에서 목적 없이, 불행하게 걷게 한 지 벌써 40년이 흘렀다. 정사 (1960), 일식 (1962), 붉은 사막 (1964) 같은 안토니오니의 고전들에서 비티는, 상류 중산층 여성조차도 공허한 관계 속에서, 그리고 생의 피로를 위로해 주지 못하는 매끈하고 이질적인 건축 공간 속에서 어떻게 마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상황이 나아졌을까? 적어도 예술영화 세계에서는 아니다.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는 익숙하고 음울한 영화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 여성들을 병들게 하는 권태와 소외의 고통을 더 선명하게 극화해낸다. 감독의 첫 장편인 이 영화에서, 두 명의 여성이 각각 78분 러닝타임의 절반씩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동정 없는 카메라 앞에서 적나라하게 고통받는다.
1부는 모텔같이 무색무취한 캘리포니아의 임대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스무 살 정도의 가인(최윤선 분)은 저지방 음식을 조금씩 먹고, 체중계를 자주 확인하며 (체중을 재다가 바지를 벗어 무게를 줄이려 시도하며), 전화가 울리면 받지 않는다—전화선은 아예 뽑혀 있다. 거의 대사가 없는 가운데 (“네”와 “감사합니다” 정도만 제외하고), 그녀는 한 통의 전화 메시지를 재생한다. 그것은 불편할 정도로 강렬하다. 한 절박한 여성이 그녀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말한다. “난 당신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미워하진 않아요. 제발 전화를 받아줘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전화 속 여성은 누군가의 아내이고, 가인은 그 여성의 남편과 불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짐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인이 그 전화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폭주하는 행동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녀는 아파트 안을 배회하며 계속해서 음식을 우적 거린다. 김진아 감독은 견디기 힘들 만큼 긴 단일 숏으로, 가인이 열린 냉장고 앞에 앉아 선반 곳곳의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장면을 포착한다. 다음 장면, 가인은 변기 앞에 몸을 웅크리고 토하고 있다.
가인의 아파트는 미국에서 여유 있는 외국인 학생이 학교 근처의 편의를 위해 급히 찾아낸 것처럼 무성의한 느낌을 준다. 그녀의 신분이 그런 걸까? 우리가 아는 것은 그녀가 한국인이며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고, 고국의 눈 내리는 풍경을 그리워한다는 사실 뿐이다.
2부로 전환되며, “난 당신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라는 그 전화 메시지가 다른 쪽에서 반복된다. 아내인 도희(이선진 분)가 한국, 서울에서 캘리포니아로 전화를 건다. 남편의 내연녀에게. 또 다른 권태, 또 다른 불행. 도희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날아온 상태고, 남편을 떠난 것이다. 그는 바람을 피웠고,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를 낳아야 할까? 낙태해야 할까? 한 남자를 공유한 두 여성 중 도희는 가인의 거울 이미지이며, 허름한 모텔에 머물며 입덧으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고, 거리에서 구토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인의 폭식 장면과 상응하는 장면이 있다—도희가 침대에서 자위하고, 오르가슴 뒤에 눈물을 흘리는 아주 긴, 긴 테이크다.
희망은 있는가? 한 장면에서 도희는 사과를 꽤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마지막의 수수께끼 같은 장면에서, 그녀는 손전등을 배에 비추고 한국 자장가처럼 들리는 노래를 부른다. 아기를 위해? 올해 하버드에서 강의 중인 김진아 감독이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 상영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직접 물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