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Inrockuptibles]
Published February 2007 - Source
세르주 카간스키, 불어에서 번역
섹스, 감정, 정치가 정교하게 직조된 현대적 멜로드라마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와 결혼해 물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충만한 소피에게는 단 하나의 (큰) 문제가 있다. 부부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점인데, 그 원인은 남편의 정자 기능이 약하기 때문인 듯하다. 소피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법체류 신분의 한국인 이민자 지하에게 돈을 주고 관계를 맺기로 결심한다. 왜 이 영화에 처음부터 쉽게 몰입하기 어려울까? 아마도 이야기의 출발점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소피는 남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입양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정자 기증이라는 방법도 있다. 물론 남편의 한국인 가족은 매우 종교적이며 기도에만 의존하지만, 뉴욕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40대 중산층 남성이라면 공동체의 전통과 신념을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때로는 냉철한 연출과 스타일적 장치들(거울의 과도한 사용, 소피의 내적 딜레마를 암시하는 파편화된 이미지들) 역시 관객을 일정 거리에서 머물게 한다. 지나친 형식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소피와 지하의 관계가 점차 돈을 매개로 한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미묘하게 변화하듯, 영화는 서서히 관객을 사로잡으며 의미와 감정의 두터운 층위를 펼쳐 보인다. 영화의 중심에는 고전적인 삼각관계가 맥동하고 있으며, 김진아 감독은 세 인물 중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이중으로 ‘배신당한’ 남편 앤드류를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도록 세심히 조율한다.
<두번째 사랑>은 또한 수동적인 아내였던 한 여성이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맞서 자신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몸과 운명에 대한 주권을 획득해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섬세한 페미니즘은 영화가 우회적으로 다루는 이주와 불법체류 문제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정치적 차원은 익숙한 전제를 뒤집는 극적 선택들 속에서도 드러난다. 서사의 주체이자 동력은 여성이고, 여성이 남성에게 돈을 지불해 관계를 맺는다(그녀는 피해자이자 포식자의 위치를 동시에 점한다). 나아가 불안정한 지위를 지닌 불법체류 이민자를 이용하는 백인 부르주아 질서를 교란하는 이 관계는, 감정이 싹트면서 또 한 번 변모한다.
파스칼 페랑의<채털리 부인의 사랑> 처럼, 이 영화에서도 감정과 섹스(그리고 정치)는 밀접하게 얽혀 있다. 지하가 이전과는 다른, 더 부드럽고—더 정서적인—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할 때, 소피는 그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붙인다. 매우 동시대적이고 일관된 성적 솔직함을 지닌 이 장면들은, 존 스탈이나 더글러스 서크가 한때 영화화했을 법한 고전 미국 멜로드라마의 전통 안에 놓인다. 그렇게 조용히, 커플의 관계, 남성성과 여성성, 계급, 타자성에 대한 모든 규칙들이 이 현대적 멜로드라마 속에서 다시 섞인다. 열린 결말에 이르기까지 인내심 있게 구축된 이 영화는 감정적 온기와 스타일적 거리두기 사이의 균형을 아름답게 성취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베라 파미가의 아름답고도 불안하게 흔들리는 얼굴—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에 의해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