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시옹]

Published October 24, 2007 - Source

브루노 이셰르, 불어에서 번역


소셜 시크. 한 미국 여성이 미등록 이주자에게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대가를 지불한다. 그녀는 점차 이 모험의 감각에 익숙해진다.

한국인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영화감독 김진아의 첫 장편영화 〈두 번째 사랑〉은 일종의 고도로 계산된 숨바꼭질 같은 영화다. 이 작품은 일상적 인종주의와 사회적 차별이라는 문제를 분명히 다루면서도, 그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코드들을 교란한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 그리고 사회적 역할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결국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 이른다.

이러한 전복은 영화의 주인공에서부터 시작된다.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소피는 언뜻 보기에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눈먼 이기심의 괴물이라 부를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그렇게 단순한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 소피는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 앤드류와 결혼한 인물로, 그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불임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남편의 가족은 독실한 신앙을 이유로 이혼도, 정자 기증이라는 선택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소피는 자신에게 집요하게 덧씌워진 이 운명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남편과 같은 한국계이지만 미등록 신분으로 살아가는 젊은 남성을 찾아낸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피는 그에게 계약을 제안한다. ‘자연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갖게 해주는 대가로 한 번의 관계마다 300달러를 지불하고, 임신이 확인될 경우 1만 달러의 보너스를 약속한다.

이 제안이 지닌 집요한 왜곡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완벽한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에 의해 발화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계약의 실행, 곤혹스러운 성관계—그 불편함은 당사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소피는 자신을 짓누르는 운명에 맞서겠다는 결심을 다시금 강화한다.

차이나타운의 음습한 방, 닳아 해진 연인의 트레이닝복—그녀를 자극하는 것은 빈곤이다.

배우들—특히 인상적인 베라 파미가—은 이 욕망의 기계를 생생하게 육화한다. 김진아 감독은 외양, 계급, 도덕, 성을 교차시키며 부르주아적 확신들을 흔들어 놓는다. 물론 이러한 놀이에는 모호함이 따르고, 일부 장면들은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영화는 자신의 힘을 획득한다. 물질적 안락함과 은폐된 사회적 폭력이 공존하는 세계의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이런 사랑의 도피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현실적인 부작용과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김진아 감독은 이야기의 결말을 관객 스스로가 써 내려가도록 남겨둔다. 그결과는놀라울 정도로대담한, 인상깊은시퀀스로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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