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BI] 군중 속 얼굴들: 영화 속 ‘위안부’

Published April 25, 2024 - Source

조니 한

일본과 한국은 성노예제를 역사 기록에서 지우려 해왔지만, 생존자들은 다른 기록 보관소에서 피난처를 찾아왔다.

<떠도는 구름들>(나루세 미키오, 1956).

나루세 미키오의 <떠도는 구름들>(1956) 도입부에서는 귀국한 일본 민간인들이 낡은 배에서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두 개의 짧은 와이드 샷 후, 나루세는 미디엄 샷으로 전환하여 주인공 유키코를 소개하며, 익명의 얼굴들로 가득한 군중 속에서 그녀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는 유키코와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동남아시아에서 돌아온 귀국자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그 여성들 무리는 위안부, 게이샤, 간호사, 타이피스트, 사무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 사이에는 겨울 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코다 유키코도 있다.

‘위안부’는 일본 제국군에 의해 성노예로 강제로 동원된 여성들과 소녀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미즈키 요코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들 중 일부가 군중 속에 있지만 관객이 이를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안부’의 정확한 숫자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추정치는 20만에서 50만 명에 이른다. 그들은 일본 제국 전역에서 동원되었으나, 희생자의 대다수는 한국인이었다. 한국에서는 ‘위안부’라는 완곡어법을 따옴표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며, 이는 ‘위안’이라는 단어가 이 맥락에서 암시하는 잔혹함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당시에는 ‘위안부’가 금기시되던 주제였기 때문에, 미즈키의 시나리오에 ‘위안부’가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까지도, 1955년 창당 이후 선거 정치를 장악해온 일본의 보수 정당 자유민주당(LDP)의 일부 구성원들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국가가 조직적으로 성노예제를 운영한 사실을 축소하려 한다. 한국의 보수 세력 또한, ‘위안부’ 역사를 직면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양국 간 외교적·경제적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할 것이라는 명분 아래, 자민당의 공식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떠도는 구름들> 시나리오에서 ‘위안부’가 언급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인데, 이는 영화의 원작 소설에서는 이들이 완전히 빠져 있기 때문이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소설의 저자 하야시 후미코는 만주와 동남아시아에서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전쟁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녀가 방문한 일본군 기지에서 이러한 여성들을 실제로 마주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의 소설에서 피해자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의도적인 은폐는 아닐지라도, 이는 일본 제국주의 역사의 묘사를 불완전하게 만든다.

<떠도는 구름들>(나루세 미키오, 1956).

한국과 일본 양국이 ‘위안부’를 역사적 기록에서 지워버리려 해왔지만, 이들은 여전히 다른 아카이브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 <떠도는 구름들>의 오프닝 장면을 본 관객이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서는 ‘위안부’의 존재를 식별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기억은 역사라는 잔해 속에서 발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그의 에세이 <마지막 볼셰비키>(1992)에서 기억은 단순히 회상이나 사실들을 저장하는 저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특정 목소리를 다른 목소리보다 우위에 두는 선별된 원칙에 따라 구성되고 배치된다고 쓴다. ‘위안부’를 다룬 영화들은 그 수가 적지만, 이들 허구적 재현과 비허구적 증언이 함께 모여 하나의 기억의 별자리를 형성하며, 그 자체로 특정한 형태의 영화사 서술을 이룬다. 랑시에르는 이를 “기억의 허구들”이라 부르며, 잊히고 침묵당한 존재들에게 증언하고자 하는 시도라 말한다.

일본 제국이 팽창하고 태평양 전선의 상황이 격화되면서, 징집된 남성들의 수는 그에 비례해 증가했다. 야스지로 오즈와 스즈키 세이준도 그들 중 하나였다. 1939년 4월, 만주에 주둔 하던 오즈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3일 전쯤 여기에 ‘위안소’가 생겼다. […] 이곳 반도의 거부할 수 없는 오락이다.” 오즈의 전후 영화들 가운데 어느 것도 ‘위안부’를 다루지 않으며, 그는 이들과의 접촉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도 없다.

반면 스즈키는 이 노예화된 여성들과의 경험에 대해 훨씬 더 솔직하게 말했다. “성적 결핍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 참모부는 전략적으로 우리에게 군 위안부 세 명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스즈키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1991년 저서 <스즈키 세이준: 벚꽃 아래의 사막>에서 말한다.

스즈키가 1965년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 <여공 이야기>를 ‘위안부’라는 존재를 명시적으로 다룬 형태로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것은—해당 소설과 구로사와 아키라가 공동 각본을 쓴 다니구치 센키치의 1950년 영화 <새벽 탈출>에서는 이 존재가 암시적으로만 등장했는데—단순한 스튜디오 과제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다무라의 소설은 ‘육체 문학’(니쿠타이 분가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간의 육체를 생체 정치의 무대로 삼는다. 이 무대에서는 육체의 고통과 쾌락이 전체주의 국가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스즈키는 다무라의 문장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육체의 고통과 쾌락은 유지하되, 와이드 숏과 클로즈업의 교차를 통해 다무라의 정치적 전제를 거부한다. <여공 이야기>는 만주의 외딴 군사 기지에 배치된 ‘위안부’ 하루미를 중심으로, 이름 없는 한국 여성을 포함한 여섯 명의 여성들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는 하루미가 겪는 잔혹한 상황들을 와이드 숏으로 담고, 그 뒤에야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며 일본 파시즘 속에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피폐함을 드러낸다.

반면 다무라의 소설은 성이(sex) 병사들에게 열어주는 해방의 가능성에 집착하며, 이 ‘해방’이 여성들에게 가해진 제국주의적 폭력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스즈키의 영화는 다무라의 낭만주의적 시선을 걷어내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 자민당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유일한 반제국주의 인물인 우노가 육체적 쾌락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국인 ‘위안부’에게도 일본인 여성과 동일한 존엄을 부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름 없는 한국 여성은 하루미의 자살 소식을 들은 뒤 마지막 말을 남긴다. “일본인들은 서둘러 죽고 싶어 하지.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살아야 해.”

<여공 이야기>(스즈키 세이준, 1965).

실제로 일본 제국군의 성 노예 생존자들은 태평양 전쟁 이후에도 살아남았지만, 수치심과 낙인으로 인해 대부분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그들의 트라우마는 <너의 어머니 이름은 조선인 창녀였다>(1991)와 같은 소프트코어 포르노 영화들에서 잔인하게 소비되었고, 이는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적으로 증언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7년 군사 정권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는 일련의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겪게 된다. 헌법이 개정되어 자유 선거, 언론의 자유,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 이루어졌다. 여성운동의 성장과 성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성숙한 인식 속에서, 김학순은 1991년, ‘위안부’ 피해 경험을 최초로 공개 증언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열린 김학순의 기자회견은, 1990년 일본 정부 대표가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같은 해 12월 9일, 그녀는 도쿄에서 또 다른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학순의 증언은 한일 양국에서 방송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여러 나라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전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무조건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수요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 시기 즈음,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영화 집단인 바리터가 활동하고 있었다. 비록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바리터는 1990년대 초반 여성 노동의 현실을 다룬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페미니즘과 집단주의를 실천하는 대안적 영화 제작을 장려하는 워크숍도 열었다. 1992년 바리터가 해체된 직후,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변영주는 자신의 첫 장편 영화인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1993)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제주의 성관광 산업이 어떻게 부유한 일본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파헤친다. 현지 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던 중, 변영주는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성매매에 뛰어든 여성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 어머니는 과거 '위안부'였다. 일본 제국주의가 두 세대에 걸쳐 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깨달은 변영주는 곧 '나눔의 집'이라 불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공동 거주지를 방문하게 된다. 변 감독은 생존자들과 함께 1년간 생활하며 다음 프로젝트인 <낮은 목소리> (1995)를 구상했고, 이는 풀뿌리 상품 판매와 필름 기부를 통해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을 수집한 최초의 영화이자, 한국에서 극장 개봉된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낮은 목소리>(변영주, 1995).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천하는 역사서술 방식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그들의 활동을 중심에 두는 동시에, 그들의 일상 또한 조명한다. 식사 자리에서 함께 웃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들이 담긴다. 변 감독이 현재 시제에 집착한 덕분에 이 영화는 생존자들을 과거의 잔재로가 아니라,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현재의 인물들로 기록해낸다. 어느 순간, 변 감독은 그들에게 만약 성노예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묻는다. 답변은 제각기 달랐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미술을 하고, 산책할 만큼 건강하고, 학교에 다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을 거라는 대답들. 나눔의 집 거주자들은 화면 속에 비극적인 역사의 무게를 실어내는 동시에, 수치와 패배주의를 넘어서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 또한 전한다.

<낮은 목소리>의 완성 8개월 후, 변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중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공동체는 새로운 장소로 이사했으며, 그들은 변 감독에게 또 다른 영화를 찍어달라고 제안했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자 생존자인 강덕경은 말기 폐암 판정을 받았고,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변 감독이 기록해주기를 원했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낮은 목소리 2> (1997)로, 바리터가 지향해온 협업적 영화 제작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변 감독은 생존자들이 감독과 제작진을 설득하여 일주일 동안 호박 수확을 촬영하게 했던 일을 따뜻하게 회상한다. 생존자들은 카메라 구도에 대해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변 감독은 그들에게 왜 호박 수확 장면을 촬영하길 원했는지를 묻는다. “우리가 직접 키운 거잖아요.” 이에 변 감독이 다시 묻는다. “화면에 어떻게 비치고 싶으세요?” 그러자 생존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들이 내가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걸 봤으면 좋겠어요.” 이 장면은 <낮은 목소리2>가 기념하고자 하는 세 가지 노동을 상징한다: 수확의 노동, 변 감독과 생존자들의 공동 저작, 그리고 ‘위안부’라는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의 자율적 정체성 회복이다. 영화의 공식 포스터에는 생존자 중 한 명이 붐 마이크를, 또 다른 이는 카메라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슬레이트를 들고 있다.

강씨의 말기 진단에 대한 나눔의 집의 애도는 곧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던 이영숙의 1997년 텔레비전 인터뷰로 이어진다. 그녀는 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쉽게 죽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살 거예요. 우리는 강해요. 일본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고, 우리는 더 강해질 거예요.”

물론, 남은 생존자들도 자신들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단 9명에 불과하다. 1997년에는 그 숫자가 200명에 가까웠다. 변영주는 생존자들과 함께 한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는데, 그것이 1999년작 <낮은 목소리 3-숨결>이다. 이 영화에서 생존자들은 서로를 인터뷰하며 더욱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15년, <낮은 목소리> 20주년 기념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변 감독은 자신의 일본군 ‘위안부’ 3부작이 생존자들의 기억을 보존하는 영화적 아카이브로 기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들의 고통을 잊으려는 주류 역사 서술에 맞서기 위함이며, 그들의 투쟁을 오늘날의 여성운동 속에 자리매김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변 감독은 <지울 수 없는 슬픔>의 마지막을, 한국 사회 내 강간 및 성폭력에 대한 암울한 통계를 담은 자막으로 마무리한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오늘날 성폭력의 현실과 맞물리고, 생존자들의 정치적 투쟁은 곧 우리의 투쟁이 된다.

상단: <낮은 목소리 2> (변영주, 1997).상단: 《낮은 목소리 2》 (변영주, 1997). 하단: <낮은 목소리 2> (변영주, 1997) 극장 포스터.

부산 출신의 시인이자 번역가인 에밀리 정민 윤은 자신의 2018년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서 기억을 구축하는 유사한 작업을 수행한다. 시 「증언들」의 황금주 섹션에서 윤은 이렇게 쓴다:

해방의 날이었다    갑자기,

말 발굽 소리도 없이   마지막 병사가

부엌에 서 있었다    “당신 나라는 해방됐소,

그런데 내 나라는 불길 위에 앉아 있소.”

그래서 나는 병영을 떠났다

나는 걸었다

나는 혼자였고     38선까지 걸었다

미군들이 나에게 DDT를 너무 많이 뿌려서

내 이가 다 떨어졌다.

변영주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 위에 병치시켰다면, 윤은 제국 일본과 미국을 잇는 실날 같은 연결고리에 빛을 비춘다. 한때 일본 제국군이 점령했던 한반도는 이제 해외 미군 기지 중 최대 규모인 캠프 험프리스가 자리한 곳이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이 만들어낸 기억의 허구는, 새로운 제국 권력이 오래된 제국을 어떻게 땅에 묻고, 그 죽은 황제의 피로 얼룩진 옷을 입었는지를 서사화한다.

엘레인 김과 최정무는 <위험한 여성들: 젠더와 한국 민족주의>의 서문에서, 20세기의 한국은 “일제 식민주의의 여러 겹과 [...] 일본 식민 통치의 정치적·사회적 기반 위에 자신의 시스템을 덧씌운 미국의 헤게모니가 겹겹이 쌓인 팔림시스트로 (오래된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을 쓴 양피지 조각 -과거가 현재 아래 희미하게 남아 있는 상태) 읽혀야 한다”고 제안한다.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 대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데 동의했고, 곧이어 한반도를 불길에 빠뜨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네이팜 탄 초기 모델을 자유롭게 실험했다. 이 시기, 한국과 미국 군대가 다시 활용한 “일본 식민 통치의 기반” 중 하나가 바로 ‘위안부’였다.

따라서 ‘위안부’가 새로운 제국 질서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준익의 역사 드라마 <님은 먼 곳에> (2008)가 베트남 전쟁 시기의 “위문 공연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주인공 순이는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써니”라는 이름으로 전쟁 스타가 된다. 여기서 ‘위문공연자’의 ‘위문(慰問)’이라는 단어는 ‘위안부(慰安婦)’의 ‘위안(慰安)’ 중 ‘위(慰)’ 자를 공유한다. 즉, 일본 제국이 구축한 단어 ‘안(安)’은 지워지고, 대한민국 정부는 새로운 주인을 위해 그 자리에 ‘문(問)’을 덧입힌 것이다.

<님은 먼 곳에>(이준익, 2008).

미국의 지지를 받던 한국군 군사 정권들과의 전폭적인 협조 아래, 미군은 자국 기지 인근의 여러 도시들을 일종의 유흥지대로 탈바꿈시켰다. 그곳에서는 허가받은 성노동자들—그중 다수는 사실상 노예 상태였다—이 미군 병사들을 상대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지촌 중 하나인 동두천은 김진아 감독의 VR 3부작 <동두천> (2017), <소요산> (2021), <아메리칸 타운> (2023) 중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자 소재지이기도 하다. 이 3부작은 각각 미군 ‘위안부’들이 일했던 특정 장소를 방문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들이 강제로 의료 시설에 구금되었고, 일부는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360도, 3D 형식으로 제작되어, 시청자는 보통 회전 의자에 앉은 채 조용한 거리, 버려진 건물, 텅 빈 바와 같은 공간에 놓이게 된다. 유령처럼 이 공간 위를 떠도는 시청자는, 그곳에 남겨진 의료 학대, 성 착취, 살인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김진아 감독은 1992년, 서울대학교 1학년 재학 중에 미군 병사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윤금이 씨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반미 군사 시위의 물결을 직접 목격했다. 일부 학내 단체들은 반미 정서를 고조시키기 위해 훼손된 윤금이의 시신 사진을 유포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이러한 이미지의 유포 자체를 또 다른 형태의 착취로 보았고, 이와 같은 재현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녀를 가상현실 기술로 이끌었다. 그녀는 VR 기술을 활용해 <동두천>에서 윤금이를 추모했다.

김종민 프로그래머와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VR 영화가 “타인을 착취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한다. 시청자는 미군 ‘위안부’들이 고통받고 목숨을 잃었던 공간을 직접 이동하며 체험하게 되며, 그 역사적 참사를 드라마틱한 재연 없이 마주해야 한다. 이제 시청자는 더 이상 관음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물리적 현실을 증언하는 ‘목격자’가 된다. 김진아 감독의 VR 영화는, 에밀리 정민 윤이 「평범한 불행」의 네 번째 변주에서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가 이러한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비극을 막을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소녀가 되고 / 소녀는 자갈이 되며 / 역사는 그녀를 물 위로 튕겨 보낼 것이다.”

관음적인 시청 태도에 대한 김 감독의 저항은 <아메리칸 타운>에서 가장 명확한 형태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미 공군 군산기지 인근 기지촌인 ‘아메리칸 타운’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아메리칸 타운>는 기지촌 재개발 계획이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발표되면서 “이 역사를 아카이브하기 위한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다. 이 작품은 닫힌 듯 보이는 빈 술집들에 관객을 위치시키고, 그 유령 같은 마을을 배회하게 만든다. 가끔씩, 여성의 모습이 술집 곳곳의 거울이나 반사면에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더 이상 반사된 형상이 아니라, 좁은 골목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실체로 등장한다. 그녀는 시청자와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누구세요?” 그녀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우리의 ‘관람’ 방식은 즉각 도전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혹은 침묵—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향할 수 있다. <아메리칸 타운>의 결말은 결국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밀며,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와 맺고 있는 우리의 관계성을 반영한다. 결국, 그녀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타운>(김진아, 2023).

1961년 5월 16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대한민국의 제3대 대통령 박정희는 ‘아메리칸 타운’ 건설을 승인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 박정희는 만주군 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조선인 신분으로 일본 육사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썼다. 1961년 박정희의 집권은, 실질적으로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었다. 이 역사를 이보다 더 간결하게 묘사하는 한국 영화는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 (2005) 외에 거의 없다. 이 영화는 1979년 암살당하기 직전 박정희의 마지막 몇 시간을 풍자적으로 그린다.

영화는 ‘위안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 제도를 실행한 제국 세력을 돕는 데 협력한 한국 보수 세력의 책임을 묻는다. 초반, 비키니 상의를 벗는 세 명의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 은밀한 장면은 곧 박정희의 여성을 관리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의 시점에서 촬영된 것임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박정희의 성적 일탈을 그의 친일 행적과 연결시킨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고위 공직자의 문란한 행실에 대해 비판하자, 박정희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랫도리를 가지고 뭐라 하겠나.” 이 대사는 물론, 영화 속에서 박정희가 말하는 대부분의 대사는 일본어로 전달된다. 임 감독은 박정희를 구제국과 신제국 사이의 연결 고리로 묘사함으로써, 국가 권력 기제와 성 착취 사이의 평행 관계를 암시한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궁정동 안가 (safe house)에서 총으로 두 발 쏘아 살해했다. 첫 번째 총알이 박정희의 가슴을 관통할 때, 임상수 감독은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춘 미디엄 클로즈업 숏을 선택한다. 그러나 두 번째 총성이 울릴 때, 카메라는 로우 앵글로 전환되어, 박정희의 관자놀이에 권총이 겨누어진 채 위로 올려다보는 시점을 보여준다. 마치 거대한 동상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김재규는 박정희를 그의 일본식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로 부른다.

첫 번째 총알은 박정희의 육체를 죽이고, 두 번째 총알은 ‘박정희’라는 신화를 죽인다. 이후 임 감독은 정교하게 안무된 크레인 숏을 통해 대통령의 여성들을 담당하던 중앙정보부 요원 박성호가 안가를 가로지르며 시체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연출한다. 높은 시점에서 바라본 시신들은 신화적 인물은 커녕 실재하는 인간보다도 인형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임 감독은 이러한 연출의 인위성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박정희 암살의 밤을 ‘신성한 비극’으로 포장하는 기존의 프레임을 걷어낸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모두가 오랫동안 떠받들어온, ‘박정희는 엄격하지만 자애로운 아버지였으며 한국을 빈곤에서 구했다’는 국민적 서사에 맞서는, 하나의 대항 기억 픽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2005).

그러나 임상수 감독의 이 ‘대항 기억 픽션’에는 큰 대가가 따랐다. 영화의 극장 개봉을 앞두고, 박정희의 자녀인 박지만과 박근혜—후자는 2013년 직접 대통령이 된다—는 영화 제작사 MK픽쳐스를 상대로 법원에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부에 사용된 기록 영상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변영주, 이준익, 김진아 감독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2015년, 박근혜와 아베 신조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 분쟁을 봉합했다. 이는 당시 일본 외무장관 기시다 후미오의 발언에 따른 것이다. 아베는 800만 달러를 제안했고, 법적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미온적인 사과를 덧붙였다. 그 대가로,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한국의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메리칸 타운>가 공개된 2023년, 대한민국 정부는 주한미군 유지를 위해 80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동두천은 빠르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며, <동두천>에서 윤금이가 지나던 상점과 술집들 중 상당수가 사라졌다. 이 역사로부터의 시간적 거리가 멀어지고, 그 물질적 증거가 사라질수록, 공동의 기억을 구축하는 일은 그만큼 더 절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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