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지 보이스]

Published April 8, 2008 - Source

짐 리들리


만약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에밀리 왓슨이 연기한 낯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 순교자가 어느 날 성행위 도중에 문득 깨어나 “이름도 모르는 정자 제공자와의 격렬한 섹스가 무의미한 자기희생보다 훨씬 낫잖아?”라고 깨달았다면, 그 결과물은 김진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된 에로틱 멜로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왓슨이 연기한 성스러운 순수한 여성의 자기희생을 보다 세속적으로 변형시킨 캐릭터로, 베라 파미가는 푸른 눈을 가진 유령 같은 여성을 연기한다. 그녀의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남편(데이비드 L. 맥기니스 분)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한다. 남편을 구하고자 (혹은 그녀 스스로 그렇게 믿으며), 또 그의 독실한 가족의 매서운 시선을 피하고자, 그녀는 극도로 가난한 불법 체류 한국인(김기덕 감독의 <시간>에 출연한 하정우 분)을 고용해 비밀리에 아이를 가지려 한다. 1회당 300달러, 임신 시에는 고액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이 영화의 감정적, 낭만적 위기를 위한 전개는 줄거리만 보면 황당해 보일 수 있지만,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를 통해 그녀의 고통스러운 미국 체류기를 기록한 바 있는 한국 출신 감독 김진아는, 몸짓, 시선의 교환, 그리고 특히 손동작이라는 신체 언어의 디테일에 집요하게 집중함으로써, 노골적인 구조를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춘다.

두려움 없이 자주 누드로 등장하는 파미가는 열정의 각성을 작고 미묘한 뉘앙스의 스펙트럼으로 표현해낸다. 매튜 클라크의 몰입도 높은 촬영을 포함해, 이 영화는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 이후 가장 뜨겁고 정교하게 조율된 섹스 신들을 담고 있다.